株毒에 빠진 직장인 많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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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7면

◇단타매매를 즐긴다=A회사 金모(29)씨는 사이버 트레이딩을 통해 분초를 다퉈 주식을 매매하는 '단타족'이다.

회사에서 증권사에 접속할 수 없도록 막아놓았지만 우회 프로그램을 깔아 매매 프로그램에 접속한다. 하루라도 주식 거래를 하지 않으면 큰 일이 난 것처럼 불안하다. 실제로 이익을 내지도 못하면서도 샀다 팔다를 반복하기 일쑤다. 金씨는 "은행 금리가 아니라 증권 거래 수수료 만큼만 벌었으면 한다"며 "최근에 신용·미수 거래에까지 손을 대고 있다"고 밝혔다.

B은행 朴모(28)씨는 증권투자를 그만둔다고 주변에 공언해놓고 또 다시 주식시장에 뛰어 들었다. 주식을 사고팔지 않으면 불안감이 엄습한다고 말했다. 朴씨는 "혼수 자금까지 주식에 투자했다"며 "복권이나 경마를 하는 사람의 심리를 알 것 같다"고 털어놨다.

◇대박을 꿈꾼다="조금씩 버는 데는 싫증이 났다. 잃더라도 크게 잃고 벌더라도 크게 벌고 싶다." C회사 朴모(29)씨는 대박을 노리는 '모험파'다. 몇몇 고교 동기들이 1990년대 후반 벤처기업 투자로 큰 이득을 본 것을 보고 뒤늦게 '상투'를 잡고 들어간 것이다. 그가 노리는 종목은 관리대상 혹은 장외거래 종목이다. 위험천만하지만 한 밑천 잡은 친구들을 생각하면서 여전히 시세 프로그램을 뚫어지게 보고 있다.

월급쟁이로 언제 큰 돈을 만질 수 있느냐는 회의 때문에 대박을 노리는 직장인도 있다. D보험회사에 다니는 李모(29)씨는 "월급 저축해서 언제 억대의 돈을 만질 수 있는가"라고 반문하며 "대박 주를 잡을 수 있다는 신념으로 시황을 분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이 잘 안풀리거나 불쾌한 일을 당하면 꼭 주식매매를 한다는 李씨는 바닥까지 떨어진 몇몇 보유 주식을 보며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그는 "부자아빠의 꿈을 꾸며 주식투자에 나섰다. 어린 자식 앞에서 가난한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으며 꼭 성공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루머에 귀 기울인다='루머에 사고, 뉴스에 팔아라'라는 증권 투자 원칙이 몸이 밴 E정보통신회사 沈모(29)씨. 沈씨는 인터넷 메신저를 통해 증권동호회 회원과 정보를 교류하느라 항상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그러나 그가 입수한 루머가 투자에 도움된 적은 거의 없다. 오히려 정확한 판단을 흐리게 한다.

沈씨는 "신뢰성을 의심하기는 하지만 달리 근거로 삼을 것이 없어 루머에 의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직장에 다니는 대학 친구들을 만날 때면 항상 친구 회사의 투자계획·해외진출·실적 등을 물어보곤 한다.

최근 직장을 그만둔 金모(27)씨는 인터넷 증권동호회에 그럴싸한 루머를 쓰며 하루를 보내고 있다. 동호회 게시판에 글을 올리면 바로 메신저를 타고 확대·재생산된다. 자신이 쓴 루머가 거래소 공시에 오르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金씨는 "내가 쓴 글이 전혀 근거없는 얘기는 아니다"라며 "결국 시장을 움직이는 힘은 루머에 있다"고 자신했다.

강병철 기자

bonger@joongang.co.kr

사람들이 만나면 처음엔 여러 화제로 이야기꽃을 피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결국 남자들은 여자 이야기, 여자들은 남자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흔히 이것을 '깔때기 현상'이라고 부른다. 요즘 직장인들에겐 '주식 깔때기 현상'이 흔히 일어나고 있다. 직장인 모임에서 증권 이야기가 주된 관심사란 것이다. 대선을 앞두고 널뛰기 장세가 펼쳐지고 있지만 여전히 주식 시장에서 직장인들은 '대박의 꿈'을 좇고 있는 것이다. 증권 매매 프로그램에 접속했다가 상사에게 문제 직원으로 찍히기도 한다. 그러나 아랑곳하지 않고 매매 주문을 낸다. 현대증권 투자클리닉 하용현 원장은 "주식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결국 본업을 그르치게 된다"며 "잠시도 시황을 챙겨보지 않으면 불안하다는 직장인의 상담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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