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공주, 9·11 관련 의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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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사우디아라비아가 9·11 테러에 연계됐을지 모른다는 의혹이 미국 내에서 불거져 파문이 일고 있다.

댄 바틀렛 백악관 공보국장은 23일 "연방수사국(FBI)이 사우디아라비아 왕실의 9·11 테러 연루 의혹에 대해 조사해 왔다"고 밝히고, "조사 결과에 대해 어떠한 예단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같은 날 뉴욕 타임스는 "사우디아라비아 의혹을 둘러싼 논란은 사우디아라비아가 최대 산유국이고 미국의 아랍 맹방이라는 점에서 대 이라크전을 앞둔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에 매우 민감한 정치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고 보도했다.

테러조직 알 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이 사우디아라비아 태생이고, 9·11 테러범 19명 중 15명이 사우디아라비아 국적이다.

◇드러난 의혹=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최신호(11월 23일자)에서 9·11 테러를 조사한 상·하원 합동위원회 보고서를 인용, 주미 사우디아라비아 대사인 반다르 빈 술탄 왕자의 부인인 하이파 알 파이잘 공주의 계좌에서 빠져 나간 자금이 2000년 초 사우디아라비아 출신 유학생인 오마르 알 바요미의 계좌로 이체됐다고 보도했다. 알 파이잘 공주는 고(故)파이잘 왕의 딸이다.

자금이 이체된 시점은 칼리드 알미드하와 나와크 알하즈미 등 9·11 테러범 2명이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알 카에다 회의에 참석하고 미국에 도착한 지 수개월 후다. 바요미는 이후 샌디에이고에서 두 사람을 위해 환영파티를 열어줬고, 이들의 아파트 임대 자금도 대준 것으로 수사당국은 보고 있다.

바요미가 미국을 떠난 2001년 7월 두 사람의 아파트 임대료(월 3천5백달러)는 오사마 바스난이라는 다른 학생의 계좌로 이체됐는데 바스난은 바요미의 친구이자 알 카에다 활동에 동정적인 인물로 알려졌다.

◇의회·FBI 공방=상·하원 합동위원회 의원들은 수사 당국이 이같은 의혹에 대해 열심히 수사하지 않았다고 비난했다고 AP 통신은 보도했다. 론 와이든 상원의원은 "이라크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어 중동 내 다른 나라에 대한 경계심이 풀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FBI는 성명을 내고 "우리는 테러 지원에 대한 수사 단서를 적극적으로 추적해 왔다"고 반박하면서 "바요미와 바스난은 9·11 테러 후 비자 관련 사기로 기소된 상태"라고 밝혔다. 그러나 뉴욕 타임스는 "기소됐을 때 바요미는 이미 영국에 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의혹 부인=주미 사우디아라비아 대사관은 알 파이잘 공주가 바요미에게 돈을 보낸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공주가 병을 앓고 있던 바스난의 가족에게 1998년 4월 1만5천달러를 줬으며 99년 12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매달 얼마씩을 보낸 점은 인정했다. 대사관의 나일 알 주베이르 대변인은 보도된 의혹들에 대해 "사실과 다른 무책임한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워싱턴=김진 특파원

jin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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