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훈범의 세상사 편력

젊은 그대가 정치를 바꿔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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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총리가 화젭니다. 50, 60대 장관들은 좀 얼쯤하겠습니다. 20, 30대에 희망을 주는 인사라니 참으세요. 10대들도 따라 꿈을 키울 것 아닙니까.

더위도 쫓을 겸 ‘썰렁한’ 숫자놀이 한번 해봤지만 제가 주목하는 건 젊은 나이도 아니고 ‘소장수 아들’도 아닙니다. 남다른 그의 행적입니다. 청소년들에게 그런 도전을 해보라고 글을 쓴 적이 있거든요.

그때 당나라 명신 이필(李泌) 얘기를 했더랬습니다. 이런 거였지요. 이필은 어릴 때부터 총명해 재상인 장구령이 아꼈습니다. 어느 날 이필은 장구령이 혼잣말을 하는 걸 듣습니다. “누구는 충실하지만 꼬장꼬장해서 틀렸어. 하지만 누구는 부드러운 게 마음에 든단 말이야.” 이필이 따지듯 묻습니다. “공은 원래 평범한 백성으로 곧은 도를 행해 재상 자리까지 오르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왜 지금은 부드럽게 떠받드는 사람을 좋아하십니까.” 장구령이 정신이 번쩍 났겠지요. 이필의 나이 아홉 살 때 일입니다. 이필은 그런 마음가짐을 더욱 갈고 닦아 벼슬이 재상에 이릅니다. 4대에 걸쳐 황제의 신임을 받지만 초심을 잃지 않지요. 청렴함은 물론 온갖 음해 속에서도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황제에게 직언을 합니다. 당나라 최대의 위기였던 ‘안사의 난’ 때 큰 공을 세워 나라를 구합니다.

이필처럼 일찌감치 정치에 뜻을 품어보라고 썼었습니다. 정치를 늘 파워게임으로만 생각하는 기성 정치인들에게 맡겨놔서는 이 땅의 정치 발전은 백년하청일 테니 젊은 그대가 나서서 틀을 바꿔보라고 말입니다. 구체적으로 지방의회 의원부터 도전하라고 했습니다. 살고 있는 지역의 발전을 위해 뭐가 필요한지 고민해 대안을 찾아보라고요. 그리고 비슷한 해법을 추구하는 정당을 찾아가 과감히 출마하라고 했습니다. 그다음에 지자체장이나 국회의원에 도전하라고 했지요. 대통령 자리도 마음에 품으라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잘해왔다면 큰물에서도 문제가 없을 테니 나가서 정치판을 확 뒤집고, 대한민국을 확 바꾸라고 썼습니다.

우리의 젊은 총리가 비슷합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정치판에 뛰어들지요. 중앙무대에서 놀라는 권유를 뿌리치고 도의원에 출마합니다. 그다음엔 지자체장이 됐고요. 소신과 추진력을 인정받았고 3선이 눈앞에 보였는데 과감히 내던집니다. 더 큰 뜻이 있음을 숨기지도 않지요. 당당히 말합니다. “3선을 하면 모든 것이 닫히지만, 불출마를 하면 모든 것이 열린다.” 그러고는 한 나라의 재상이 됐습니다.

그는 아마 더 큰 꿈을 가졌을 겁니다. 이미 도전이 시작됐지요. 아마도 쉽지만은 않은 길일 겁니다.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강력한 경쟁자들이 더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가 꿈을 이룰지, 운을 다할지를 결정하는 건 경쟁자들보다 본인 자신일 겁니다. 경쟁자들 스코어 신경쓰지 않고 자신의 플레이에 최선을 다하는 게 승리의 지름길인 골프 경기처럼 말입니다. 한마디로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지요.

흔히 범하는 오류 아닙니까. 사회생활을 시작한 젊은이가 처음엔 전철을 타고 일터로 갑니다. 승진을 하면서 교외로 이사 가고 승용차를 몰고 출근합니다. CEO가 돼서는 운전기사가 모는 차를 타고 나오지요. 성공으로 인해 사람들과 멀어지고, 세상에서 멀어지고, 다른 사람들과의 불편한 비교에서 멀어질 수 있다는 얘깁니다. 그러다 스스로 ‘마법의 성에 사는 무결점의 제왕’이라고 믿게 되지요. 주위 사람의 말이 들릴 리 없습니다. 사람들은 점점 더 입을 닫게 되고요.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항상 경계해야 합니다. 늘 처음으로 돌아가 내가 이 길을 왜 선택했나 되새겨봐야 합니다. 새 총리도 들었으면 좋겠지만 그보다 우리 젊은 여러분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도전해 보세요. 그리고 처음 가졌던 마음을 끝까지 간직하세요. 장애물을 만날 때마다 꺼내 보세요. 힘들더라도 포기하지 마세요. 그래야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준비됐습니까? 그게 어디 가능하겠냐고요? 옛날 얘기 하나 하겠습니다. 하루는 자로가 노나라 성 밖 석문에서 유숙하게 됐습니다. 다음 날 아침 성문지기가 “어디서 오느냐”고 물었습니다. 자로가 공자의 제자라고 말하자 관리가 말합니다. “아, 뻔히 할 수 없는 일인 줄 알면서도 하려는 사람 말이구려.” 성문지기가 현명한 걸까요? 그보다 공자가 위대한 점이 뭐겠습니까? 남들은 할 수 있는 일조차 하지 않는데, 하기 어려운 일이라도 마땅히 해야 하는 거라면 흔들림 없이 실천에 옮기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훈범 중앙일보 j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