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수' 흑 127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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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보

(120~134)=운명의 장면이 다가오고 있다. 바둑은 실리에서 앞선 흑이 대세를 이끌고 있다. 게다가 125로 끊어 두 점을 잡게 되어서는 사뭇 편한 바둑.

曺9단은 국후 124를 놓고 "미쳤데. 왜 그냥 죽이지"했다. 죽일바엔 왜 두 점으로 키웠느냐는 비난도 된다. 그러나 진짜 미쳐버린 사건이 백126 끊었을 때 일어났다. 曺9단은 127로 저항했는데 이수야말로 '미친 수'였던 것이다. 127로 '참고도' 흑1로 이으면 백은 2로 뻗는다. 물론 흑3으로 잡으면 아무 일도 없다. 다만 백은 4의 선수, 그리고 이후 A,B,C 등을 입맛에 맞춰 선수할 수 있다.

曺9단은 국후 "(그런 선수들이)도저히 눈 뜨고는 볼 수 없잖아"라고 말했다. 그 정도는 소소한 문제가 아니냐고 반문하자 "내가 미쳤지…넘는 수를 못보고 있었으니까…끝나버렸어"했다. 국후에도 曺9단은 흥분상태였다.

127은 조훈현 특유의 저항과 착각이 뒤범벅된 대패착이었다. 128을 선수한 뤄시허9단은 130으로 빠졌고 흑은 부리나케 131 잡았다. 얼핏 이것으로 그만인 줄 알았는데 133에서 살짝 방향을 틀어 134로 넘어가는 수가 있었다. 사실 이런 넘는 수는 전혀 어려운 수가 아니다. 이렇게 사망선(死亡線:1선)을 기어 넘어서는 으레 망한 꼴이 되니까 고려의 대상으로 넣지 않을 뿐이다. 그러나 이번엔 바짓가랑이를 기는 듯한 이 1선 넘기가 흑에게 치명상을 가하는 독수가 됐다.

박치문 전문기자

daroo@joongang.co.kr

협찬:삼성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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