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실험예술의 산실 '넥스트 웨이브 페스티벌'참관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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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 실험 예술의 산실인 넥스트 웨이브 페스티벌 (Next Wave Festival)이 올해로 20주년을 맞았다. 이 행사는 브루클린 아카데미 오브 뮤직(BAM)이 주최하는 연례행사로, 말 그대로 예술의 다음 조류를 가늠하는 무대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어 왔다. 지난달 말 필자가 이곳을 찾았을 때 슬럼가인 주변의 분위기를 아랑곳하지 않고 몰려드는 젊은 관객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1983년부터 매년 가을 이곳에서 열리는 넥스트 웨이브 페스티벌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공연을 엄선해 선보이는 국제적인 이벤트다. 작곡가이자 연주자인 필립 글래스와 로리 앤더슨, 연출가 피터 브룩·로버트 윌슨, 안무가 피나 바우슈·마크 모리스 등 세계적인 예술가들이 이 무대를 통해 명성을 쌓았다.

올 축제는 지난 10월 1일 필립 글래스의 오페라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공연으로 시작됐다. 20주년을 기념하는 무대여서인지 관객들의 반응이 더욱 열띤 것 같았다. '예술가들을 따르라'는 도발적인 주제 아래 그동안 이 페스티벌을 선도해온 베테랑 예술가의 작품들이 소개됐다. 스티브 라이히의 비디오 오페라 '스리 테일즈', 메리디스 몽크의 '머시', 로버트 윌슨의 '보이체크', 자샤 발츠의 '쾨르퍼', 니나가와 유키오의 '맥베스', 산카이 주쿠의 '히비키' 등. 이 때문인지 이번 페스티벌은 새롭고 신선한 작품의 등장보다 현재 공연예술의 흐름을 총결산하는 데 주력한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이 페스티벌의 성공 요인은 새로운 예술 표현 형태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와 위험을 마다하지 않는 도전정신이다. 평론가 엘렌 램퍼트 그로는 "예술가들의 공동작업을 통한 다양한 장르 실험을 지원하고 이를 BAM 무대에 선보임으로써 공연예술의 흐름을 선도해 왔다"고 평했다.

아이러니는 이 페스티벌이 세계적인 권위를 얻게 되면서 이제 더 이상 '넥스트'가 아니라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BAM이 연간 예산 5백만달러, 직원수 1백50여명의 대규모 조직으로 성장하면서 점점 새로운 도전보다 위험부담이 크지 않은 공연들에 치중할 수밖에 없게 되었고, 이는 혁신적인 예술가를 통한 실험보다 이미 검증된 예술가의 초청이 지나치게 잦아지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축제가 '보다 위험하고 보다 도전적인' 비주류 공연 예술가의 실험 공간으로 기능하려 했던 초기의 정신을 이어가며 새 흐름을 지속적으로 창출해갈 것인지, 현재의 명성에 안주해 안정을 택할 것인지 일견 예술가의 숙명과도 닮은 그들의 향후 선택과 여정이 궁금해진다.

뉴욕=이양희(극단 학전 기획실장)

yhlee@hakch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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