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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고래’의 아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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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옛 사회에서 건강한 아들을 낳는 것은 여인에게 강요된 부덕(婦德) 중 하나였다. 아들은 조상 제사와 대(代) 잇기를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로 여겨진 탓이다. 아이를 낳지 못하거나 딸만 낳은 여인은 제사상의 향불을 꺼뜨린 죄인으로 남편과 시집에서 버림을 받기도 했다. 칠출(七出) 혹은 칠거지악(七去之惡)이다. 여인들이 아들 낳기를 비는 속신(俗信)과 기자(祈子)신앙에 매달린 건 그래서다.

아들을 낳기 위해서라면 못 먹을 것도, 못할 것도 없었으니 지금 눈으로 보면 가히 ‘득남 잔혹사(殘酷史)’다. 조선시대 여인들은 ‘뒷간의 똥물이라도 마실 정도의 정성이 있어야 아들을 본다’는 말을 듣고 살았다. 그러니 누런 수탉의 고환을 생으로 삼키거나, 황소의 고환을 삶아 먹는 정도는 꺼릴 수준도 못 됐다. 먹는 것만이 아니다. 아들 낳은 산모의 옷을 얻어 입거나, 아들을 많이 낳은 집에서 훔친 부엌칼로 작은 도끼를 만들어 패물처럼 허리에 차고 다니는 건 예사였다.

명산대천에 치성을 드려 아들을 얻으려는 기자 행위의 역사는 훨씬 오래다. 치성의 대상이 된 돌과 바위는 기자석, 기자암이요, 샘물은 기자샘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부여왕 해부루는 늙도록 아들이 없어 산천을 찾아다니며 치성을 드리고 나서야 아들 금와를 얻었다. 공자(孔子)의 어머니도 태산(泰山)의 지맥인 니구산(尼丘山)에서 기도한 뒤 공자를 낳았다. 그래서 공자의 이름이 구(丘), 자는 중니(仲尼)라고 전한다.

건강한 아들을 얻는 데는 아버지의 역할도 중요하게 취급됐다. 『동의보감』에선 “부부가 합방할 때 그들의 건강 상태에 따라 태아의 건강이 좌우된다”고 했다. 남자로 하여금 과식을 했거나 중병을 앓은 뒤이거나, 크게 기쁘거나 슬플 때는 잠자리를 피하도록 한 가르침이 있었던 까닭이다. 동서고금에 생식 기능이 부실한 남자는 아예 임신 과정에서 배제시킨 경우도 있다. 고대 스파르타에선 젊은 아내를 둔 늙은 남편은 아내가 건강한 아들을 낳을 수 있도록 아내에게 젊은 남자를 소개하는 걸 법률로 인정했을 정도다.

‘술고래’ 아버지는 본인은 물론 아들의 생식 기능에도 악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이 동물실험에서 밝혀졌다고 한다. 고환 무게와 정자 운동성이 모두 감소해서란다. 영문도 모른 채 기자암 앞에서 눈물 흘렸을 옛 여인이 한둘이 아닐지 싶다. 미래의 아들과 며느리 마음고생 안 시키려면 술버릇부터 다스릴 일이다.

김남중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