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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엠 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11면

비틀스는 비싸다. 예전 '비트'에선 비틀스의 노래 '인 마이 라이프(In my life)' 등이 흘렀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나는 그들 모두를 사랑했어요… 나는 당신을 더욱 사랑합니다"라는 가사가 가슴 저린 '인 마이 라이프'는 그러나, 비디오로 출시된 '비트'에서는 사라졌다.

저작권 계약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삽입을 한 것이 문제가 돼 비디오에선 다른 음악으로 대체한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비틀스의 노래를 쓰는 대가가 너무 비싸다. 비틀스의 노래가 영화에서 흘러나오는 일이 의외로 많지 않은 건 그런 이유다.

대신 드라마에서 저작권료를 지불하지 않고, 대충 배경음악으로 쓰는 경우는 많다. 얼마 전 추석 특집 드라마에서 '웬 아임 식스티 포(When I'm 64)'가 주요하게 쓰였고, 주인공이 카페에 들어가면 비틀스의 노래가 단골로 나오는 경우도 많다. 이 드라마들은 외국으로 나갈 일이 거의 없고 또 드라마는 쉽게 잊혀지니 별 상관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아쉽다. 지나간 시대가 주요한 상징으로 등장하는 '홀랜드 오퍼스'나 '로얄 테넨바움'에서 흘러나오는 '헤이 주드(Hey Jude)'처럼, 비틀스의 노래는 한 시대의 정서를 그대로 그려낸다. 단지 그들의 노래 하나만으로 마음이 통하고 그 시절의 공기까지 호흡할 수 있다.

그리고 비틀스의 노래에는 인생의 희로애락이 모두 담겨있다. 때로는 '하트브레이커스'에서 러시아 여자로 위장한 시고니 위버가 사기를 치기 위해 부른 '백 인 더 U.S.S.R(Back in the U.S.S.R.)'의 황당함까지도.

'플레전트빌'이란 영화가 있다. 1950년대의 드라마인 '플레전트빌'의 세계로 빠져들어간 남매의 이야기다. 분노도, 욕정도, 패배도, 싸움도 없는 50년대의 세계에서 현대의 아이들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그들은 무엇을 배우고 가르쳐줄까.

배운 것은 삶의 소중함이고, 가르쳐준 것은 인생의 노(怒)와 애(哀), 그리고 가능성이다. 철저하게 닫혀있기에 완벽한 세계에, 불안하고 두렵기에 가능한 삶의 역동성을 불어넣은 것이다.

이 영화의 주제곡은 비틀스의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Across the universe)'다. 원곡을 쓰지는 않았고, 피오나 애플이 리메이크했다. 피오나 애플이 도전적이며 냉소적인 목소리로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를 말할 때면, 정말 이 닫혀진 문을 부숴버리고픈 욕망이 일어난다.

약 열흘 전에 개봉한 숀 펜 주연의 '아이 엠 샘'(사진)은 아예 비틀스의 노래로 모든 것을 끌어간다. 주인공인 샘이 비틀스 광이기 때문에, 그는 생활의 모든 것을 비틀스로 시작하고 비틀스로 마무리한다. 내내 흐르는 비틀스의 노래는 에이미 만·월플라워스·닉 케이브 등의 목소리로 재생됐다.

재해석보다는 그저 충실한 리메이크지만 그것만으로도 감동적이다. '아이 엠 샘'을 보는 것은 비틀스의 노래로 꾸며진, 기쁘면서도 슬픈 우리 인생의 정원을 거닐어 보는 것이니까.

대중문화평론가

lotusid@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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