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MB, 집권 후반기와 정권 재창출형 개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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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호 02면

역사는 현재를 상대화하는 미덕이 있다. 현재를 절대화하면 상황의 핵심을 놓치기 쉽다. 임박한 개각을 역사 속에서 살펴보면 상황의 핵심이 드러나곤 한다. 집권 후반기를 맞는 대통령은 자신의 뒤를 이을 정권 재창출 적임자를 찾기에 고심한다.

김영삼 대통령은 정권의 고비마다 이회창·이홍구·이수성 등 이른바 대권형 총리를 앉혔다. 그가 대권형 총리를 앉히는 데 주저하지 않은 건 ‘권력 누수 문제쯤은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YS 특유의 자신감 때문이었다. ‘김대중 총재’라는 강력한 야당 주자에 걸맞은 대항마가 필요하다는 현실 인식도 한몫했을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 역시 차기 문제를 개각을 통해서 해결하려 했다. 비주류 노무현을 해양수산부 장관에 발탁한 건 집권 후반기 DJ 개각의 백미였다. 노무현의 등장은 늙은 정당에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그는 치열한 당내 경쟁을 이끌어내 한나라당에서 찾아볼 수 없는 흥행의 마술을 연출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해찬 총리를 비롯해 정동영·김근태·천정배·유시민 장관을 내각에 끌어들여 차기 주자로 키우려 했다. 다만 노 대통령의 정권 재창출 집념은 DJ에 비해 약하고 나이브했다. 발탁된 사람들도 권력의지나 정치역량이 부족했다.
현재로 눈을 돌려 보자. ‘인사의 실적’이란 측면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오늘이 전임들에 비해 뛰어나다는 증거는 없다. 박희태→정몽준→안상수로 이어지는 집권당 대표나 류우익→정정길→임태희로 이어지는 대통령비서실장 쪽에서 ‘차기형 인물’을 떠올리려면 많은 전제들이 필요하다. 한승수→정운찬으로 이어진 교수총리 실험도 인물의 발견과 현실적 업적이란 잣대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 그런 반면 이 대통령이 집권 후반기에 맞이할 정치환경은 거칠고 도전적이다. 차기형 인물이 총리가 될 경우 레임덕이 가속화할 수 있다는 예측도 있지만 이 대통령이 그걸 두려워하지 않길 바란다.

이 대통령은 금명간 있을 개각에서 과감한 인물을 발견해 낼 것인가. 발탁의 놀라움이 있는가. 인물의 무게감이 있는가. 초당파적인 국민적 감동이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는 개각이 되길 바라는 건 그것이 최소한 2012년까지 한국의 미래에 가장 커다란 영향을 미칠 인사일 것이기 때문이다. MB를 지지하는 사람이든 MB에 실망하는 사람이든 그렇고 그런, 끼리끼리 해먹는다는 느낌을 주는 개각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이 대통령이 두려워할 건 그렇고 그런 편안한 방식의 개각이 정권 재창출을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집권 후반기 이 대통령의 차기형 개각은 정치권에 긴장감을 불어넣을 수 있다. 한나라당 내부에 역동적인 경쟁의 기운이 퍼져나가고 민주당은 강력한 대항마를 찾는 데 전념하게 될 것이다. 야권은 좀 더 현실적인 수권전략을 가다듬게 될 것이다. YS가 임명한 대권형 총리들이 DJ를 각성시켜 DJP연합의 반전을 가져온 경우도 있다. 한 나라의 정치는 이런 경쟁과 각성 속에 업그레이드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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