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석 칼럼] 우리시대 문화장관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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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박지원·이창동 등 권력실세·명망가들이 거쳐 간 자리인지라 대단한 기록이 분명하다. 유 장관, 그도 실세다. 대통령과 각별한 인연을 가진 그는 재임 초기 산하단체장 교체와 얽혀 돌격대장 이미지를 얻었지만,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캐릭터가 무기다. 그럼에도 실무형 장관에 충실했다면, 그게 아쉽다. 문화장관, 참 만만치 않다. 문화예술에 종교·언론·스포츠·관광까지 커버한다. 나라 예산 1%를 운용하지만, 국가 소프트파워의 거의 모든 것이다. 문화행정이야말로 장관 하기 나름이라는 얘기다. 문화란 무엇인가? 기회에 그걸 확인해보자. 낭만·교양 혹은 장식물이 아니다.

문화란 연극·음악·출판·영화·무용의 총합 그 이상이며, 요즘 들어 부쩍 모든 게 문화의 범주에서 다뤄지고, 새롭게 재정의가 된다. 그 점에서 이어령 시절은 문화행정의 에덴시대였다. 2000년대 초까지도 문화는 좁은 의미의 문화로 족했다. 그게 바뀐 게 이창동 시절이다. 시대 탓일까? 그는 장관직을 국정운용·통치환경의 전략적 교두보로 만들었다. 이창동 역할을 두고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그가 나름 전략가·연출가였음을 부인 못한다. 출범 초 적대적 환경을 헤쳐야 했던 MB로서는 그 이상 가는 전략가 문화장관이 요구됐다. 이 점 집권 후반기에도 변함없으며, 외려 더 중요하다.

다음 개각 때 유 장관이 유임된다 해도 변신이 필요하고, 후임 장관이라면 기대는 더욱 커진다. 그럼 그걸 어찌 구현할까? 마리오 쿠오모 전 뉴욕 지사의 말을 음미해보자. “정치란 유세를 시(詩)로 하지만, 통치는 산문으로 한다.” 그렇다면 문화행정이란 시와 산문이 결합돼야 옳다. 문화부도 그걸 안다. “문화로 지붕을 덮는다”는 캐치프레이즈는 그래서 나왔으리라. 그게 헛구호가 아니라면 한국사회의 오늘을 놓고 큰 그림부터 그려야 한다. 고약한 무교양·반(反)문화의 풍토를 돌파하는 힘은 여기에서 나온다.

상식이지만 공동체의 밑천을 확충하는 게 문화다. 그게 사회적 자본으로서의 문화이자, 치유로서의 문화다. 이 시대 문화행정은 자칫 권력의 나팔수란 비난을 받을 수도, 사회통합·소통에 기여하는 놀라운 마법을 연출할 수도 있다. 문화장관이란 그 사이에 서 있다. 그렇다면 우리시대 문화장관이란 과장급을 넘어 총리급, 아니 대통령급 장관을 자임해야 할지도 모른다. 명문화장관 대망론은 한 사람의 천재를 기다리는 일이 아니다. 전략무대로 떠오른 우리 시대 문화에 대한 나름의 점검임은 두 말할 것도 없다.

조우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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