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 카페] 4인조 재즈 밴드 ‘유발이의 소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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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발이의 소풍’은 참 빤하다. 밴드 이름에서 벌써 음악이 그려진다. 소풍이란 말이 어쩐지 소녀 취향의 아기자기한 멜로디를 부르는 듯하다. 여기까지는 순전히 추론이다. 이름에서 풍기는 뉘앙스 때문이다. 순정만화를 떠올리게 하는 소녀풍 음악은, 글쎄, 어쩐지 인디란 말과는 선뜻 어울리지 않는다.

이런 엉뚱한 편견이 앞서기 전에 이들의 음악에 꽂혔다. 소녀풍? 맞다. 우선 멜로디가 앙증맞다. 쿵짝쿵짝 리듬과 둔탁한 베이스 위에서 재즈 피아노의 선율이 폴짝폴짝 뛰어 논다. 타이틀곡 ‘봄이 왔네’ 등 살랑살랑 소풍 가는 길에 어울릴 만한 노래로 빼곡하다. 가만, 그런데 이 음악 재즈 맞아?

지난 4월 데뷔 앨범을 발표한 4인조 혼성 재즈 밴드 유발이의 소풍. 왼쪽부터 은성이(기타)·광혁이(드럼)·유발이(보컬·피아노)·종성이(베이스). [김태성 기자]

“재즈 밴드로 분류되곤 하는데, 딱히 어떤 장르로 규정되고 싶진 않아요. 실제로 우리 음악은 재즈이면서도 포크이면서도 팝이면서도…. 하하, 좀 복합적이죠. 그냥 유발이의 장르라고 해주세요.”

제 음악을 재잘재잘 말하는 이 여자, 밴드의 리더 유발이다. 유발이의 소풍의 모든 곡을 썼고 노래까지 불렀다. 본명은 강유현. 올해 스물둘. 키는 170㎝ 남짓. 몸무게는 물음표. 실눈 웃음이 인상적인 유쾌한 싱어 송 라이터다.

“제 별명이 유발이에요. 초등학교 때 친구들이 ‘유현이 발이 못생겼다’고 놀렸는데 그래서 유발이가 됐죠. 푸하. 진짜 웃기죠?”

유발이의 소풍은 재즈밴드 흠(HEUM)에서 활동하던 유발이가 같은 밴드의 드러머 광혁이를 꼬드겨서 만든 팀이다. 흠은 상대적으로 정통 재즈에 가까운 음악을 하는 밴드라 어둡고 진지한 음악이 주를 이뤘는데, “밝은 음악 한번 해볼까” 하며 뭉쳤다. 여기에다 기타 치는 은성이와 베이스 종성이가 합류해 4인조 밴드를 이뤘다. 지난해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 ‘거리의 악사 페스티벌’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이름을 떨쳤다.

“처음엔 딱 다섯 번만 무대에 오르자고 만든 팀이에요. 이렇게 데뷔 앨범까지 낼 거라곤 상상도 못했죠.”

그럴 만도 했다. 밴드를 결성하기 전까지 유발이는 한 번도 곡을 써본 적이 없었다. 한데 “밝은 음악 해보자”고 결심하자 곡들이 툭툭 쏟아졌다. 마치 일기를 쓰듯 차곡차곡 곡을 썼고, 그 곡들이 데뷔 앨범에 소담스레 담겼다. 유발이는 “며칠 동안 멜로디를 흥얼거리다 내 안에서 유행가가 될 정도가 되면 곡이 완성된다”고 했다.

이쯤 해서 유발이의 비밀 하나. 제법 길고도 진한 연애를 했었단다. 실은 데뷔 앨범에 실린 대부분의 곡이 그 연애의 추억에 기대고 있다고 한다. 실제 이들의 음악을 들어보면, 가사는 울고 있는데 멜로디는 웃고 있는 묘한 느낌이 든다. 이를테면 이런 가사. ‘너무 당연한 슬픔이었잖아/서로가 할만큼 다 한 거잖아….’ 발라드에나 어울릴 법한 가사가 통통 튀는 재즈 멜로디에 올라탔다.

“실은 어떻게든 이별의 아픔을 이겨보려고 썼던 곡들이에요. 그래서 일부러 더 밝게 불렀죠. 가사는 정말 처절한데 애써 밝게 부르다 보면 슬픔도 잊어버리게 되고…. ”

갓 꾸린 밴드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이들이 끝끝내 한 팀으로 묶여 있을지는 모르겠다. 유발이도 “유학 계획이 있어서 계속 한 팀으로 활동하기 어려울 듯하다”고 했다. 하지만 기억하시라. 유발이 이름 석 자만큼은. ‘홍대 여동생’으로 불리는 그는 언제고 또 세련된 음악을 들고 당신 앞에 나타날지 모른다. 유발이의 소풍이면 어떻고 유발이의 캠핑이면 또 어떤가. 유발이의 유쾌한 음악 나들이는 계속된다.

글=정강현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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