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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제주 설문대할망 들어보셨나요 제주 탄생 질펀한 뒷얘기를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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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태초에 할망이 있었다
고혜경 지음
한겨레출판, 240쪽
1만2000원

제주 올레길이 뭍사람들 입소문을 타면서 봉긋봉긋 솟아오른 오름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각양각색 360개나 되는 오름은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풍광이다. 오름은 어떻게 태어났을까. 제주의 창조신화는 구수하면서도 간결하게 오름의 탄생을 설명한다. ‘수수범벅을 먹은 할망이 힘차게 난사한 360발 설사탄’이 곧 오늘날 우리가 보는 오름이란다. 제주의 모태가 된 ‘할망’이 360개 오름을 똥으로 낳았다는 얘기다.

할망이 얼마나 우람하고 에너지 넘치는 여신(女神)이었나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가 제주 동쪽 바다에 떠있는 우도(牛島)의 기원이다. 할망의 거대한 오줌이 순식간에 터져 나와 홍수를 이루니 그 오줌발에 떨어져나간 땅덩어리가 섬이 되고, 패인 골짜기에 해협이 만들어지고, 이 골을 오줌이 채워 오줌 바다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더 놀라운 신화는 고기잡이 대목에서 벌어졌다. 배고픈 설문대하루방이 할망에게 낚시를 가자며 섭지코지에 도달해 바지를 벗고 바다 속으로 들어가 자신의 성기로 바다를 휘휘 젓자 고기들이 놀라 반대쪽으로 도망을 갔는데, 그곳에 할망이 다리를 벌리고 있다가 하문(下門)으로 모두 빨아올렸단다. 엄청난 거시기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터진다.

이 모든 이야기는 “설문대 시절에…”로 시작한다. 제주 사람들에게 “설문대 시절에…”란 ‘옛날 옛날에…’와 같은 말이다.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주문과 같다. 신화학자이자 ‘그룹 투사 꿈 작업가’인 저자는 ‘설문대할망 신화’를 더듬으며 전 인류에 되풀이 등장하는 ‘위대한 여신’의 원형(archetype)을 본다. 설문대할망이 연출한 똥·오줌 난장은 힘찬 생명의 축제이면서 무지막지한 은총이 아닐까.

미국에서 창조영성과 신화학을 공부하던 유학시절, 우연히 설문대할망을 만나 ‘우주 창조여신이 이 땅에 살아 있었구나’ 놀랐다는 필자는 “할망의 이미지를 되살려 다시 집단의 기억으로 불러내기 위해 이 책을 쓴다”고 밝혔다. 그토록 왕성했던 우주의 기운을 여기 우리에게 불어넣는 마법과 같은 여신, 설문대할망을 영접하자. 

정재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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