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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무엇을 반성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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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김진국
김진국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비주류 측은 당 지도부의 총사퇴를 요구하면서도 당 지도부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지적하지 않았다. 눈을 씻고 찾아 보면 공천을 잘못했다는 정도다. 두 달도 안 돼 무섭게 변한 민심이 겨우 공천 하나 때문일까. 이 정도의 인식으로는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굳이 공천을 따지자면 정세균 전 대표에게만 책임을 돌릴 수는 없다. 송영길 인천시장이 지적한 인천 계양 을 공천은 송 시장이 자신의 보좌관을 공천하려는 바람에 꼬인 경우다. 서울 은평 을도 정 전 대표가 외부 영입을 하려 했으나 당내 반발로 좌절했다.

6·2 지방선거 이후 한나라당은 변신을 꾀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소통(疏通)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얼마나 절실함을 담았는지는 접어두고라도 일단 반성하고 변화하려는 모습은 보여줬다. 지지부진하긴 하지만 청와대를 개편했고, 총리를 포함한 조각(組閣) 수준의 개각도 단행할 예정이다. 집권 이후 2년 이상 끌어온 세종시 수정안을 포기했다. 일방통행식 밀어붙이기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런 여당의 노력이 재·보선 민심에 상당히 영향을 미쳤다고 봐야 한다.

사실 민주당의 지도부 총사퇴 요구는 전당대회를 유리하게 끌고 가려는 비주류 측의 정략에 가깝다. 솔직하게 공정한 전당대회 관리를 명분으로 내세우는 게 정직하다. 아니면 지도부가 무엇을 잘못해 민심이 돌아섰는지 밝히고, 자신은 어떻게 당을 이끌고 가겠다고 밝히는 게 정도(正道)다. 국회를 버리고 장외(場外)로 돌며 대화와 타협을 외면하고 반대만 해온 노선, 친북(親北)과 종북(從北)을 구분하지 않고 정부·여당에 반대만 하면 옳다고 박수를 친 무모함, 4대 강에 대한 민심과 동떨어진 고집, 비리 의원을 위한 방탄국회가 민심에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닌지를 밝히는 게 순서다.

하지만 쇄신을 주장하며 모인 의원들 사이에는 국회에서 폭력을 휘둘러 말썽을 일으킨 의원이 버젓이 앉아 있다. 당 대표를 노리는 사람 중 일부는 기존의 ‘중도 진보’ 노선에서 ‘중도’는 버리고 더 진보로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퇴한 지도부보다 대화와 타협을 더 철저히 무시하고, 절차적 민주주의보다 육탄(肉彈)과 장외투쟁에 매진해야 한다는 건 아니지 않은가.

천안함 폭침(爆沈) 이후 민주당은 북한의 행위임을 인정하지 않고, 결의안 채택도 반대했다. 그런데도 유엔 안보리에서 강력한 결의안을 채택하지 못했다고 외교적 실패라고 규탄했다. 일종의 분열증이다. 자신의 입장도 비전도 없이 무조건 상대를 공격하려다 자가당착(自家撞着)에 빠진 것이다. 전당대회마저 같은 꼴이 돼선 민주당의 미래가 없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선거가 끝날 때마다 ‘뉴DJ’로 변신을 거듭하며 외연을 넓혀 대선 고지에 오른 전례부터 참고할 일이다.

김진국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