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사랑] 금욕이 장수의 비결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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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주위에서 초로의 남자가 자기보다 10여 세 젊은 여자를 후처로 맞았다가 과색으로 세상을 하직했다는 이야기를 가끔 듣는다. 그런 소문을 들을 때마다 섹스는 남자의 기력을 좀먹는다는 생각에 세뇌당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색을 밝히면 쉬 죽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중국의 고의서(古醫書)들은 남자의 정액 속에 에너지원이 있어 섹스 때마다 기력을 쇠진시키는 것이니 섹스를 하되 사정하지 않으면 건강하게 정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뜻에서 접즉무설(接則無泄)을 권장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 영향 때문인지 한자문화권에 익숙했던 사람들 가운데는 ‘금욕을 해야 무병장수한다’고 알고 있는 사람이 특히 많다.

미국이나 영국 등 구미에서 수학한 지식인 중에도 아이작 뉴턴이 일생동안 한 번도 결혼하지 않은 까닭에 85세까지 장수한 사실을 들어 금욕이 장수의 인자라는 중국인의 믿음에 동조하는 이가 간혹 있다. 불교의 고승 중에 80세 이상 장수자가 많은 것도 섹스 없이 살아가는 금욕주의가 그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로 흔히 예시되고 있다.

그러나 현대 의학, 특히 남성과학은 섹스 없는 생활이 장수의 길이라는 이런 주장을 전면 부정한다. 미국의 한 생명보험회사 조사에 따르면 아내와 사별한 남자는 그 수명이 평균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이것은 보험회사의 손실을 막기 위한 기초 조사였지만 금욕생활자들은 간경변증이나 위암·대장암, 그리고 각종 미생물 감염률이 부부생활을 하는 사람보다 월등하게 높았음을 알아냈다. 그리고 자살률과 타살률도 높은 수치를 나타낸 것으로 돼 있다.

비뇨기과 의사로 오랜 세월 진료하는 동안 부부생활에서 발견한 사실은 섹스 없이 사는 남성은 우울증이나 공황장애에 걸리기가 훨씬 쉽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필자는 노인들의 정신건강을 위해 다소 무리해서라도 성생활을 유지할 것을 권고하는 입장이지만 종교인들의 경우에는 이런 충고가 잘 먹혀들지 않는다. 즉 건강상의 이유가 아니라도 금욕주의를 고집하는 사람들은 신의 계시를 지키는 신앙인들이다.

가브리엘 브라운 여사가 쓴 『신금욕주의』란 책을 보면 미국의 화가로 영화 제작에도 참여한 앤디 워홀이 철저한 금욕주의자로 소개돼 있다. 그리고 이 책에는 소설 『적과 흑』의 작가 스탕달과 『전쟁과 평화』의 저자 톨스토이가 욕정을 억제함으로써 창조력을 높일 수 있었다고도 돼 있다.

이러한 금욕주의를 철저하게 실천한 사람들은 19세기 아메리카 신대륙에서 유토피아를 꿈꾸고 집단농장을 만든 일부 종교인이었다. 그중에서 Q종파의 분파인 S교회는 섹스를 극도로 죄악시하고 오로지 금욕한다는 그룹으로 지금도 적은 숫자나마 일부가 미국의 변두리에서 은둔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듣고 있다.

이들 종파는 인류 초기 아담과 이브가 섹스를 했기 때문에 에덴동산에서 추방되고 고통의 세월을 보내게 됐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남성과 여성은 완전히 격리된 생활을 하고 일터에서도 분리된 상태로 근무한다는 생활수칙을 엄격히 준수했다. 그 규칙은 너무나도 엄중해 파리들의 교미를 봤다는 혐의만으로 두 처녀가 처벌되는 해괴한 사건까지 일어났다.

비뇨기과 개원의로 일하는 동안 포교라는 미션 때문에 자신의 성기를 절단해 달라고 간절히 요청하던 젊은이를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의 굳은 신념을 설득하려고 노력하다 결국 포기했던 일은 지금도 잊어버릴 수 없는 기억이다.

섹스가 반드시 해야 할 업무나 연구의 정진을 훼방하는 경우가 간혹 있으나 그것은 종족 보존을 위해 본능적으로 가지고 태어난 욕구의 하나로서 자기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존재하는 개체 보존의 욕구, 즉 식욕과 더불어 쌍벽을 이루지 않으면 완전한 생명체라고 말할 수 없다. 이 두 가지 욕구가 강하면 강한 만큼 비례해서 생명력 또한 강하다는 것이 현대 의학의 정설임을 독자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곽대희비뇨기과 원장

<이코노미스트 8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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