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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진의 시시각각

민주당에 의인이 있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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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두 달도 채 못 돼 유권자는 왜 민주당의 뺨을 때렸을까. 오만과 우롱과 미망(迷妄)의 껍질을 깨고 다시 태어나라는 뜻일 게다. 대표적인 오만은 장상 후보 공천이다. 장 후보는 이화여대 총장을 지냈으므로 훌륭한 인품을 지녔을 것이다. 그러나 어쨌거나 위장전입 등의 문제로 총리 인준을 받지 못한 사람이다. 민주당은 외부 영입에 실패하자 막판에 허겁지겁 그를 내세웠다. “단일화만 하면 될 것”이라고 믿은 것이다. 민주당과 민노당의 노선은 민주당과 한나라당만큼이나 멀다. 그리고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은 ‘노무현’을 놓고 서로 칼을 던진 사이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선거만 있으면 눈을 가리고 단일화에 덤벼든다. 유권자가 여당 음식에 식상했으니 무조건 야당 단일 음식만 내놓으면 된다는 식이다.

민주당은 우롱의 죄도 범했다. ‘영포게이트’와 민간인 사찰을 조사하는 위원장에 도청(盜聽)으로 징역형을 받았던 신건 전 국정원장을 임명했다. 비유하자면 미국 공화당 정권의 테러용의자 고문 혐의를 조사하는 민주당 위원장에 고문으로 유죄를 받았던 전직 CIA국장을 임명한 것이다. 이런 행위는 국민을 바보로 취급하는 것이다. 민주당은 그가 사면됐고 국회의원에 당선됐으니 괜찮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면은 같은 식구였던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 직전에 한 것이다. 사면(赦免)이 아니라 사면(私免)이다. 그리고 정동영의 동지로서 정동영의 앞마당 전주에서 당선된 게 무슨 국민의 면죄부인가.

민주당의 미망(迷妄)은 북한의 천안함 폭침을 규탄하는 국회결의안에 반대한 것이다. 햇볕정책을 추진했던 정당인 만큼 북한 도발의 원인(遠因)과 사태의 해결방안을 놓고는 충분히 다른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 소행’마저 인정하지 않은 것은 레드 라인(red line·금지선)을 넘은 것이다. 미국 상·하원을 비롯해 국제사회가 규탄하는데 정작 이 나라의 제1 야당이 북한을 감싸니 중도·보수 유권자가 염천(炎天)의 땀을 닦으며 투표장에 나간 것이다.

민주당의 보다 심각한 문제는 “우리는 잘못 가고 있다”고 외치는 이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런 목소리는 정대철 상임고문이 거의 유일하다. 그는 당내 비주류 워크숍에서 “종교적 집단인 북한에 대해 친북 입장을 취함으로써 ‘저 사람들이 이성적 집단·정당인가’라고 의심할 때가 종종 있다”고 민주당의 친북노선을 비판했다. 장성민 전 의원은 김대중(DJ) 대통령 정권 때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냈다. 그는 사태 초기부터 북한 정찰총국이 반잠수정을 이용해 공격했을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제기했다. 그러나 그는 민주당의 ‘천안함 미망’을 막아내는 데 몸을 던지지 못했다.

50여 년 역사의 민주당이 정신적으로 이렇게까지 무너진 적이 없다. 정권이나 의석은 언제든 잃을 수 있다. 그러나 제1 야당이 정신을 잃으면 국가가 불행해진다. 거대 집권세력을 누가 견제할 것인가. 민주당에선 ‘알 깨고 나오기’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지역과 맹북(盲北)주의라는 알을 깨고 나와 합리와 공동체 가치를 존중하는 새로운 조류(鳥類)로 태어나야 한다. 그런데 어떤 의인(義人)이 있어 이 일을 해낼 것인가.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