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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지도자들은 ‘열공’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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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중국 관영 CC-TV에 비친 ‘집단학습(集體學習)’ 현장이다. 2명의 초청 강연자가 주제발표를 했고,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문화체제 개혁 연구’가 이날 주제였다. 리웨이(李偉) 전국선전간부학원 교수 등이 발제를 했다. 4개월 동안 준비했다는 그의 강연에 참석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수업은 2시간 넘게 진행됐다. 묻고 대답하고, 토론하는 장면이 TV화면에 비쳤다.

그들의 ‘집단학습’ 전통은 길다. 혁명 시기 옌안(延安)에서는 ‘사상통일 학습’이 진행됐고, 문혁 때는 ‘마오(毛)어록 학습’이 격렬하게 벌어지기도 했다. 이 전통을 창조적으로 제도화시킨 사람이 후진타오 주석이다. 그는 2002년 10월 권력 정점에 오른 지 2개월여 만에 ‘헌법 공부’를 하자며 지도자들을 불러모았다. 지난 23일 회의가 66번째였다.

주제는 다양했다. ‘의약식품 개혁’에서부터 ‘군(軍)·민(民) 융합 방안’, ‘경제 전환기 적응’ 등에 이르기까지 주요 현안을 공부 책상 위에 올려놨다. 그중 가장 많은 것은 ‘글로벌 전략’이다. 66차례 집단학습 중 27번이 세계 정세와 관련된 것이었다. 중국 지도부의 시각이 어디로 뻗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중앙당이 공부를 하니 지방 관리들도 책을 잡을 수밖에 없다. 지난 7월에만 쓰촨(四川)·톈진(天津) 등 수십 개 각급 지방 당위원회가 유사한 형식의 집단학습을 했다.

중국은 공산당이 만든 나라다. 당이 먼저 생긴 후 국가가 설립됐다. 공산당 독재(그들은 ‘專政’이라 표현)가 지금까지도 흔들리지 않고 지속되는 이유다. 당연히 공산당 이외의 정치적 대안은 없다. 그들이 공부를 강조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당이 무능력하거나, 타락한다면 국가가 위기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당은 젊은 당원을 양성하고 요직에 앉혀 끊임없이 세대 교체를 단행한다. 7000만 당원 중 각계 엘리트를 선발해 한 해 수천 명씩 해외연수를 보낸다. 이 같은 자기혁신이 지난 30년 경제성장을 이끌었다.

중국 지도자들이 화이런탕에서 ‘열공 모드’에 빠져 있던 그 시간. 우리나라 정계는 총리실 민간인 사찰이 권력투쟁 양상으로 발전하면서 혼란스러웠다. 여와 야, 그리고 당내 계파로 나뉘어 서로 눈을 흘기는 것이 우리 정치권의 일상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상대를 공격하고 헐뜯기에 익숙한 한국 정치인들이 열공 모드에 빠진 중국 지도자를 이기기는 어려워 보인다. 동북아 정세는 더욱 더 예리한 정치적 판단을 요구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한우덕 중국연구소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