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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가 ‘피겨의 양준혁’이 되길 바라며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77호 14면

김연아

지난주 프로야구에서는 ‘양신’ 양준혁(41·삼성)이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피겨 여왕’ 김연아(20·고려대)는 서울에서 열린 아이스쇼를 마치고 캐나다로 출국했다. 두 사람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김연아가 빙상의 양준혁이 됐으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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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하지 마시라. 김연아가 마흔 살까지 결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뜻이 아니다. 양준혁처럼 오랜 시간 동안 우리 곁에 선수로 있어줬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다.
김연아는 이번 아이스쇼에서 자신의 새로운 갈라 프로그램 ‘불렛프루프’를 공개했다. 힙합 스타일로 살짝 꼬아서 넘긴 옆머리와 반짝이는 검은색 의상, 그리고 섹시하면서도 파워풀한 몸동작. 역시 김연아였다.

그런데 이번 갈라 프로그램을 보면서 어딘가 한 구석이 허전했다. 김연아의 멋진 공연을 다시 볼 수 있는 건 참으로 즐거웠지만, 대회에 갖고 나가는 경쟁 프로그램을 보기 전에 갈라(경쟁 부문이 모두 끝난 후에 하는 특별공연)만 먼저 보게 됐으니 말이다.

김연아는 올 초 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 완벽한 연기로 금메달을 땄다. 각종 대회에서 세계 정상을 휩쓸어 버린 김연아의 행보를 두고 말이 많았다. 이제 미련 없이 선수 생활을 접을 것이라는 둥, 연예계에 데뷔할 것 같다는 둥….

김연아는 똑 부러지게 말했다. 올해 열리는 그랑프리 시리즈에는 나가지 않겠지만 내년 세계선수권대회를 준비하고 있다고. 선수 은퇴는 아니라는 얘기였다.

김연아가 내일 갑자기 은퇴 선언을 해버린다고 해도 미래를 축복하고 응원할 준비는 돼 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김연아가 가장 매력적일 때는 그가 숨 막힐 듯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도 여유로움와 대범함을 보여주며 경쟁자를 기 죽이던 그 순간이었다.

사실 피겨는 그 어느 종목보다 고통스러운 준비 과정을 거쳐야 하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동시에 최고의 기량을 보여줄 수 있는 기간이 길지 않다. 그래서 다른 종목에 비해 선수 생명이 짧은 편이다.

야구 선수 양준혁은 마흔 한 살에 선수 은퇴를 선언했다. ‘선수로서 환갑’이라는 수식어가 자주 따라붙는 나이다. 그래도 아쉽다. 양준혁이 아직도 뭔가 더 보여줄 게 있을 것 같아서다. 양준혁이 ‘환갑’에도 후배들에 뒤지지 않는 기량을 보여주기까지는 악착 같은 노력과 자기관리, 야구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있었다. 그는 “내 라이벌은 투수도 선후배도 아니었다. 나이가 많으면 야구를 못할 것이라는 편견이었다”고 했다.

김연아도 양준혁 같은 말을 남기고 은퇴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면 너무 큰 욕심일까. 매번 1등만 하는 김연아가 아니더라도 좋다. 자부심 넘치는 ‘선수로서 환갑’ 스케이터 김연아. 생각만 해도 좋다.

얼마 전 TV 프로그램에 나와서 자신에 관한 악성 댓글 이야기를 하다가 “돈연아요?” 하고 크게 웃었던 김연아다. 10년 뒤 김연아가 “악플 말인가요? ‘할머니 김연아, 이제 제발 은퇴해라’ 이런거요?” 하다가 깔깔 웃는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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