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피라미드 '비밀의 문'열지 못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1면

폭 12㎝·길이 30㎝의 장난감 같은 로봇이 좁은 통로를 따라 천천히 올라갔다.

60m쯤 나아갔을 때 석회석으로 된 문이 막아섰다. 그러자 로봇은 하단에 장착된 드릴을 길게 빼내 문을 뚫기 시작했다. 이어 로봇 상단에 달린 카메라가 조그만 구멍 너머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순간 현장의 스태프들과 전세계 시청자들은 마른 침을 삼켰다. 5천년간 신비에 묻혀있던 피라미드의 내부가 처음으로 속살을 내보이게 될 참이었다.

그러나 화면을 보던 이들은 '아~', 안타깝게 큰 숨만 토해냈다. 후대인들의 성급한 호기심을 피라미드 건설자들이 일찌감치 예견했던 것일까.

고감도 렌즈에 잡힌 벽 너머에는 금빛 찬란한 화려한 장식물도, 미라가 잠들었을 법한 석관도, 채색 잘된 벽화도… 그 어느 것도 없었다. 석실(石室) 대신 또 다른 석회석 벽이 버티고 있을 뿐이었다(사진). 탐사용 로봇은 힘없이 뒷걸음질쳤고 스태프들은 머쓱한 표정으로 짐을 꾸렸다.

케이블·위성채널인 내셔널지오그래픽이 17일 오전 9시부터 두시간 동안 생중계한 이집트 쿠푸왕 피라미드 탐사는 이처럼 싱겁게 끝을 맺었다.

<본지 9월 16일자 s7면>

이번 이벤트를 위해 1년간 준비했던 이집트의 탐험가이자 학자인 자히 하와스 탐사 대장은 "앞으로 1년간 더 준비해 추가 탐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내셔널지오그래픽 TV 대표인 팀 켈리는 "난 탐사의 순간을 즐겼다. 우리는 실망하지 않았다. 성공적이라고 평가한다"고 말했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인 쿠푸왕 피라미드는 기원전 2500년 무렵 축조됐다. 높이 1백46m에 한 변의 길이가 2백30m인 대 피라미드로 네개의 통로를 갖고 있다. 지난 1백여년간 고고학자들은 피라미드 내부에 왜 그렇게 좁은 통로가 있으며 그 갱도가 어떤 비밀을 감추고 있는지 의문을 품어 왔다.

고고학자들은 로봇이 탐사할 석문 뒤쪽에 비밀의 방이나 고대문서가 보관돼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코리아 관계자는 "좀 실망스럽긴 하지만 침몰된 타이타닉호에 대한 탐사를 1985년 생중계 했을 때도 널빤지 서너장을 발견했을 뿐이었다"며 "앞으로 추가 프로젝트를 통해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 프로그램은 오는 21일(오후 8~10시)·22일(오후 1~3시) 두차례 재방송된다.

이영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