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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성 쌀 재배로 판로 개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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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지난 12일 오후 경북 의성군 단북면 정안리 들녘. 황희원(54)씨가 논둑에서 벼 포기를 살펴보고 있다. 벼의 키는 50~60㎝로 여느 논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수확하면 일반 쌀과 전혀 다른 갈색 쌀이 나온다. 품종은 기능성 쌀 ‘가바(GABA)’다. 황씨는 지난해 논 2만3100㎡(약 7000평)에 시범적으로 가바를 심었다. 소득은 2950만원. 벼 40㎏짜리 한 가마의 가격이 5만9000원으로 일반 벼의 농협 수매가 4만5000원보다 31%나 높았다. 그는 “계약재배로 전량 수매되는 데다 가격도 좋아 농사 지을 맛이 난다”며 웃었다.

황씨처럼 기능성 벼를 재배해 판매 걱정을 더는 농민이 늘고 있다. 쌀을 가공하거나 유통하는 업체와 계약해 전량 납품하기 때문이다. 일부 기능성 쌀은 비싸게 팔려 농민들 사이에 ‘효자 품종’으로 꼽힌다. 이는 일반 쌀의 생산량을 줄이는 효과도 있다. 기능성 쌀은 특수한 기능이 있거나 가공용으로 사용되는 것을 말한다. 국내 농가에 50여 종이 보급돼 있다. 이 중에서도 계약재배로 판로가 보장된 ‘가바’ ‘설갱’이 인기를 얻고 있다.

가바는 벼 육종학자인 서학수(69) 전 영남대 교수가 개발한 품종이다. 두뇌활성화 물질인 가바 아미노산이 많이 함유돼 혈압과 혈당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이 품종의 생산·유통을 맡은 영농조합법인 ‘자연과 유기농’(대표 서상학)이 전국 지자체와 손잡고 계약재배에 나섰다. 첫 해인 2008년 경북·경남의 20만㎡에 가바를 재배했으나 올해는 경북 의성·상주, 전남 강진·영암, 경기도 광주 등지로 확대되면서 재배면적이 334만㎡로 늘었다. 수매한 벼는 찧어 포장한 뒤 20㎏짜리 한 부대당 12만원에 판매하고 있다. 6만원 남짓인 일반 유기농 쌀의 두 배 가격이다. 서 대표는 “농민들은 판매 걱정을 덜고, 소비자는 건강에 좋은 쌀을 먹을 수 있다”며 “희망 농가가 많아 내년에는 면적을 두 배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농촌진흥청이 개발한 주정용 품종인 설갱도 인기다. 양조회사인 국순당이 2008년 농가와 계약재배에 나서면서다. 설갱은 발효가 잘 돼 고급 쌀 술이나 막걸리 제조에 사용된다. 막걸리의 인기가 치솟으면서 재배 면적도 급증하고 있다. 2006년 2만㎡였지만 지난해는 360만3000㎡로 늘었다. 충북 충주시 설갱벼작목반의 이상용(53) 대표는 “쌀 수매가나 수매량에 신경 쓰지 않아 마음 편하다”고 말했다. 경남 고성군의 그루밀영농조합법인(대표 손상재) 조합원 4명은 10만㎡에 쌀국수 제조용 품종인 ‘고아미’를 재배하고 있다. 생산된 쌀은 서울의 국수제조업체가 전량 수매한다. 이 업체는 쌀국수를 만들어 전국 학교에 급식용으로 공급하고 있다. 손 대표는 “가격은 일반 쌀과 비슷하지만 판로 걱정이 없어 좋다”고 말했다.

농진청은 체지방 감소 효과가 있는 ‘고아미 2호’와 당도가 높은 ‘단미’ 등의 계약재배도 추진하고 있다. 농진청 답작과의 홍하철(47·농학박사) 연구관은 “기능성 쌀 재배 면적이 늘어나는 만큼 일반 쌀의 생산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홍권삼·황선윤·신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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