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9월 북한 청진] 거리 곳곳에 꽃제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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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법적인 매춘 행위로 나라의 질서를 어지럽힌 죄는 무겁게 응징해야 한다."

지난해 9월 말 함북 청진시의 신암시장 앞 공터. 트럭 위에서 고개를 숙인 채 공개재판을 받던 20대 남녀는 마이크를 통해 재판관의 말이 흘러나오자 고개를 떨어뜨렸다.

붉은 머리띠를 한 여성이 옆에 선 남성에게서 성매매의 대가로 받은 돈은 북한돈 1000원. 쌀 1㎏ 정도를 살 수 있는 돈(한국은 쌀 1㎏에 2500원 정도)에 몸을 팔아야 할 정도로 고단한 삶을 살던 이 여성은 곧이어 수갑이 채워진 채 노동교화소로 실려갔다.

함께 재판을 받은 5명의 남자도 위조 달러 사용과 강도.강간 혐의가 인정돼 처벌받았다.

중앙일보는 국내에 처음 공개되는 북한의 공개재판(북한에선 군중재판이라 함) 광경 등 생생한 화면을 담은 동영상을 6일 단독 입수했다.

90분 분량의 비디오 테이프에는 청진지역 꽃제비(어린 부랑자)들의 참담한 모습과 탈북자 수용소인 수성관리소의 모습 등이 담겨 있다. 동영상은 북한 국경경비대 소속 군 장교가 촬영한 것으로 일본 N-TV가 입수해 중앙일보에 제공했다.

이제까지 북한 외부로 유출된 동영상은 가방 속 소형 카메라로 몰래 찍은 것이었으나 이 테이프는 대부분 직접 비디오 카메라를 들이대고 대담하게 촬영했다.

이 장교는 "공화국(북한) 인민들이 10년 넘게 경제난을 겪고 있는 실상을 외부에 알리고 싶다"며 테이프를 건넸다고 N-TV 관계자는 전했다.

테이프에는 휘어지고 풀이 무성한 철길 위에 굶주림에 지쳐 죽은 듯이 너부러진 꽃제비 소년.소녀들이 등장한다. 또 옹기종기 모여 군불을 쬐며 능숙하게 담배를 꺼내 무는 열살 안팎의 소년도 있다. 동상에 걸려 발가락이 모두 잘려나간 두 발을 드러낸 채 평양소주병을 끼고 광장을 기어다니는 누더기 차림의 어린이 얼굴도 잡혔다.

함북 도보위부에서 일한 탈북자 최모씨는 "청진이 함북에서는 대도시이다 보니 인근 지역에서 꽃제비가 몰려들고 있는 것"이라며 "굶거나 얼어 죽는 경우가 적지 않아 주민들도 무관심하게 넘기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초췌한 여자아이 초췌한 얼굴의 여자 어린이가 광장 한가운데에서 행인들을 바라보고 있다.


북한의 시장 청진시 인근 하천변에 들어선 시장. 주로 옷가지와 생필품을 팔며 중고품도 취급한다.


쓰레기통 뒤져서라도 … 청진의 한 주민이 쓰레기통에서 먹을 것을 골라 비닐봉지에 담고 있다.


힘에 부친 꽃제비 청진 시내에 꽃제비로 보이는 아이가 힘에 겨운 듯 고개를 숙인 채 구부려 앉아 있다. 꽃제비는 경제난과 함께 생겨난 어린 부랑자를 말한다.


북한 청진 시내를 지나는 철길 위에 꽃제비(어린 부랑자)소녀가 지쳐 쓰러져 있다. 북한에는 최근 경제난과 빈부격차가 심해져 꽃제비들이 부쩍 늘고 있다고 한다.


"나도 먹고 싶은데" 계란과 옥수수를 먹고 있는 주민들을 바라보는 꽃제비.


발가락 잘린 아이 동상으로 발가락이 모두 잘려 보행이 불가능한 북한 어린이가 맨발로 광장에 앉아 있다. 옆에는 평양소주병이 보인다.


공개재판 받는 남녀 7명 신암시장 앞 광장에서 20대 남녀 7명이 공개재판을 받고 있다. 재판관과 주민들의 모습은 지붕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왼편의 남녀 한쌍은 매춘혐의로 잡혔고 나머지는 강도.강간과 위조달러 사용 혐의가 인정됐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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