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경제관리 개선 조치'2개월 "평양 상점들 세일 경쟁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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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깎아준 만큼 내 월급에서 배상해야 하기 때문에 곤란합니다."

지난달 30일 평양 대성수출품전시장. 남쪽에서 온 손님이 집요하게 가격을 깎자 판매원이 손사래를 치며 던진 말이다. 그러나 물건 꺼내랴, 포장하랴, 얼굴에는 땀방울이 송송 맺혔는데도 미소만은 잃지 않았다.

관광지에선 외화를 벌어들이기 위한 움직임이 전에 없이 활발했다. 옥류관·동명왕릉·평양교예극장 등 해외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에는 컴퓨터를 설치해 관광지나 공연실황의 동영상을 담은 비디오CD를 틀어주며 손님들의 구매욕을 자극했다.

지난 7월 1일 시행된 물가·임금 인상을 골자로 하는 '경제관리 개선조치'가 북한 사회에 활기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지난달 27일부터 4박5일의 방북 기간에 만난 북한 사람들은 "생산직을 우대해 사회주의를 실리적으로 운영하려는 조치"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계획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근로자들의 임금이 삭감되는 것을 그들은 당연시했다. 김책공업종합대학 출신의 한 북측 안내원은 "업종별로 근로자의 기준임금이 있지만 목표를 달성한 공장과 그렇지 못한 공장의 근로자들 사이에 임금 차이를 두는 것은 사회주의 분배원칙에 벗어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같은 품목이라도 상점마다 가격이 조금씩 다른 점도 특이했다. 함께 방북한 한국농업기계공업협동조합 윤여두(尹汝斗)이사장은 "지난 5월에 왔을 때 고려호텔 기념품점의 황구렁이술이 20달러였는데, 이번엔 10달러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아직까지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정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기관별로 실적제(인센티브제)가 강화되면서 매상을 올리기 위한 상점들의 가격 경쟁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경제개선 조치로 가장 큰 수혜를 본 층은 농민들일 것이다. 농업과학원의 한 관계자는 "국가의 곡물 수매가격이 50배 정도 올라 토지 사용료 등을 제외한 농민들의 실질분배 몫을 현금으로 계산하면 연 6만원이 넘을 것"이라며 "농사가 잘된 일부 협동농장 농민 중에는 연 10만원 이상의 소득을 올리는 사례도 나타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연말에 결산분배를 해봐야 정확한 수입을 알 수 있겠지만 이 예상이 맞다면 엄청난 액수임이 틀림없다. 대학을 졸업한 사무직 근로자의 기본임금이 2천5백원(연 3만원) 정도이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사무원으로 분류되는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 관계자들도 경제개선 조치 이후 실질적인 구매력은 높아졌다고 말했다. 민화협의 한 관계자는 "예전에는 공장 생산품이나 농업 생산물을 국가가 너무 낮은 가격으로 수매했기 때문에 생산자들의 생산 의욕을 떨어뜨린 게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근로자나 농민들이 이번 경제개선 조치를 환영하고,'한번 해보자'는 각오를 새로 다지고 있다"고 말했다.

임금이 오른 이후 식량(쌀·옥수수·감자 등)을 제외한 기초생필품의 국가 배급제는 폐지돼 개인이 필요한 만큼 구입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그래서인지 생필품을 파는 국영상점이나 직매점 등은 낮시간에도 주민들로 북적댔다.

환율은 1달러당 1백50원이었으나 고려호텔만은 1백51원이었다. 그 이유를 환전원에게 물었으나 자신도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어쨌든 방북 기간 중 이같은 환율에는 변동이 없었다.

달러는 호텔과 관광지 기념품점,외화상점 등 해외 관광객이 주로 찾는 곳에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지만 유독 한가지 제한이 있었다. 고려호텔에서 환전한 북한돈은 호텔 내에서만 사용하도록 한 점이다. 또 환전한 북한돈을 사용하려면 반드시 환전 영수증을 제시해야 했다. 이에 대해 호텔 환전원은 "기관별로 환전 금액을 정산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2백원이 넘는 암달러 시세로 바꾼 돈이 통용되는 것을 통제하기 위한 조치로 보였다. 조만간 이 제한조치도 풀릴 가능성이 커 보였다.

이처럼 변모한 북한 사회의 모습을 보면서 북한의 경제관리 개선의 종착역이 어디일지 궁금해졌다. 민화협의 한 관계자는 "지난달의 경제개선 조치는 시작일 뿐이다. 앞으로 계속 후속 조치가 있을 것"이라며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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