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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 한국 소프트 코리아] 4. 한국인 기질이 소프트 경쟁력 원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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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할리우드 영화 평균 제작비의 10분의 1, 일본 드라마 평균 제작비의 6분의 1. 한국 소프트의 세계무대 진출은 분명 "의도하지 않은 성공"(한국콘텐츠진흥원 국제마케팅팀 전현택 팀장)이었다. 우리도 미처 몰랐던 한국인의 기질, 이른바 '한류 DNA'가 작용한 것은 아닐까.

전문가들은 한국 소프트의 경쟁력에 한국인의 독특한 기질이 작용했다고 분석한다. 공통된 지적은 ▶이야기를 좋아하고 ▶남의 일에 곧잘 참견하고 개입하며 ▶'빨리빨리'를 외치는 성급한 면이 단점 아닌 장점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 이야기에 강하다=영화.드라마 관계자들은 한국 소프트의 경쟁력을 독창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이야기 전개 방식(스토리 텔링)'에서 찾는다. 특히 같은 소재라도 영상 속에 버무려 내는 '영상 서사'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영화 '올드보이'는 일본 만화가 원작이지만 할리우드는 원작 아닌 한국 영화와 리메이크 계약을 했다. 독특한 소재보다는 이를 극적으로 풀어내 관객 입맛에 맞춘 영상 서사 능력을 높이 산 것이다. NHK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일본인의 63%가 '겨울연가'의 최대 매력으로 '스토리'를 꼽았다.

일본 영화 '링''주온'의 리메이크를 주도한 버티고 엔터테인먼트의 프로듀서 로이 리는 "할리우드 관계자들은 미국에서 뮤직비디오 한편 찍는 돈으로 수준 높은 영화를 만드는 한국 영화에 깊은 인상을 받는다"며 "내러티브(서사)와 스토리 텔링이 워낙 좋기 때문에 할리우드만큼 돈이 있다면 한국이 (할리우드보다) 영화를 더 잘 만들 것"이라고 말한다.

KBS 글로벌전략팀 김신일 PD도 "한류 스타 인지도 덕도 있지만 워낙 재미있게 잘 만들기 때문에 한국 드라마가 팔린다"며 "그 배경에는 국내에서의 치열한 경쟁이 있다"고 분석했다.

'폰''엽기적인 그녀'를 리메이크 하고 있는 매버릭 필름의 최고경영자(CEO) 마크 모건은 "스타가 중심인 할리우드와 달리 한국 영화는 줄거리 위주라 내러티브에 강하다"고 말한다. 할리우드는 '톰 크루즈를 캐스팅했으니 무슨 내용의 영화를 만들까'하고 접근하지만 한국은 '이러이러한 줄거리라면 어떤 배우를 써야 하나'라는 식으로 풀어간다는 것이다.

스타보다는 줄거리를 보고 영화를 선택하는 한국 관객의 까다로운 입맛도 기여했다. 여론조사기관 TNS(2004년 9월)에 따르면 한국 관객은 영화 선택의 제일 조건으로 배우(9.2%)나 감독(3.6%)이 아닌 재미(49.7%)와 작품성(34.1%)을 꼽았다. 2003년 영화진흥위원회 조사(중복 응답)에서도 영화의 줄거리(89.4%)가 배우(65.1%)나 감독(26.8%)보다 훨씬 높았다.

◆ 참견해야 직성이 풀린다=일본 드라마는 방영 전에 모든 시리즈를 완성하는 사전전작제다. 반면 한국은 제작과 방영을 병행하는 열악한 제작환경이다. 그러나 이게 거꾸로 한국 드라마의 경쟁력을 키웠다.

드라마의 인기가 높을수록 인터넷 시청자 게시판에는 수많은 요구사항이 올라오고 제작진은 이에 호응해 결말을 바꾸기도 한다. 한국 시청자들은 줄거리가 마음에 안들면 채널을 바꾸는 게 아니라 마음에 들 때까지 제작진에 이러쿵 저러쿵 참견한다.

KBS 방송문화연구팀 김호석 연구원은 "시청자의 요구를 받아들이며 줄거리를 바꾸는 드라마 제작환경은 시청자에게 공동작가 역할을 부여한다"며 "완성도가 낮아진다는 비판도 있지만 대중성과 상품의 품질을 높이는 순기능이 크다"고 말했다.

◆ 약이 된 '빨리빨리'=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LA지사의 마케팅 디렉터 알렉시스 월리치는 한국인의 역동성을 한류 DNA의 하나로 꼽았다. "한국인 특유의 '빨리빨리'가 요즘 같은 시대엔 좋은 기질(good quality)"이라는 것이다. 그는 또 한류의 성공 요인 중 하나로 인구를 들었다. "한국은 인구가 적어 항상 밖을 내다볼 수밖에 없다"며 "세계와 관계를 맺어야 하기 때문에 어디에서나 통하는 소프트를 만들었고 그게 한류로 이어졌다"고 말한다.

고아로 어렵게 자란 사람이 많은 베트남에는 '유리구두', 가부장제에 대한 향수가 남아 있는 중국에는 '사랑이 뭐길래', 부드러운 남성을 통한 순애보적인 멜로를 원한 일본에는 '겨울연가' 등 각국이 원하는 서사를 들고 그 나라에 파고들 수 있었던 것이다.

특별취재팀

노재현 문화부장(팀장), 이세정 경제부 차장, 유상철 국제부 차장,안혜리.정현목.김준술.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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