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국회의원의 ‘성희롱 발언’을 개탄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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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한나라당 강용석 의원의 ‘성희롱 발언’이 물의를 빚고 있다. 국회의장배 전국 대학생 토론대회의 뒤풀이 식사 자리에서 여성과 특정 직업을 비하하는 발언을 해 동석한 여대생들이 성적 수치심과 모욕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보도된 내용을 보면 과연 국회의원의 입에서 나온 말인지 믿기지 않을 정도다.

강 의원은 토론대회와 관련해 “심사위원들은 내용을 안 듣는다. 참가자들의 얼굴을 본다”며 “(패널은) 못생긴 애 둘, 예쁜 애 하나로 이뤄진 구성이 최고다”고 말했다고 한다. ‘여자는 실력보다 얼굴’이라는 식의, 명백히 성차별적인 발언이다. 아나운서를 지망하는 여대생에게는 “다 줄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래도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동석한 여대생은 “특정 직업인이 성접대를 하고 있다는 식으로 들렸다. 수치심과 모욕감을 느꼈다”고 했다. 발언이 “예쁜 여자만 좋아하는 다 똑같은 남자”라며 대통령까지 걸고 들어가는 대목은 한층 가관이다. 지난해 청와대를 방문한 적이 있는 여대생에게 “대통령이 너만 쳐다보더라. 옆에 사모님만 없었으면 네 (휴대전화) 번호도 따갔을 것”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과연 일국의 국회의원이 맞는가. 더구나 강 의원은 남존여비(男尊女卑) 사상의 잔재가 혹시라도 남아있을 수 있는 노인 세대도 아니고, 미국 하버드대에서 법학 석사까지 딴 40대 초반 ‘젊은 피’다.

한나라당은 어제 중앙윤리위원회를 열고 강용석 의원을 제명하기로 결정했다. 강 의원은 성희롱 발언을 한 적이 없다며 당 윤리위원회에 재심 청구를 하겠다고 밝혔지만, 당사자인 여대생의 말은 다르다. 중앙윤리위원회의 주성영 부위원장도 어제 징계 결정을 발표하면서 “강 의원의 소명은 윤리위원회 위원들을 설득시키기에 부족했다”고 말했다. 게다가 강 의원은 2005년 ‘한나라 칼럼’에 ‘섹시한 박근혜’란 글을 올렸다가 구설에 휘말린 전력(前歷)이 있다. “군살 하나 없이 날씬한 몸매에 애도 없는 처녀”라면서 “많은 유부남이 박근혜의 완벽한 아치 모양의 허리에 감탄을 금치 못했을 것”이라고 썼다. 이번 성희롱 발언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엿보인다면 지나친 견강부회(牽强附會)인가.

정치인의 ‘말’은 무겁다. 영향력이 큰 만큼 책임도 막중하다. 사적인 모임이나 술자리였다고 해서 말에 대한 책임이 덜어지는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 상원 원내총무가 파티 석상에서 가볍게 건넨 덕담 때문에 불명예 퇴진하기도 했다. 2002년 당시 공화당의 트렌트 롯 상원의원은 스트롬 서먼 의원의 100세 생일 겸 은퇴 파티에서 “서먼이 대통령이 됐다면 미국은 더 좋아졌을 것”이라고 했다. 서먼이 1948년 대선 후보였던 것을 상기시키는 ‘덕담’이었다. 그런데 서먼의 유세 캐치프레이즈 중 하나가 ‘흑백분리’였다. 그는 사적인 자리이고, 별 뜻 없이 한 말이라고 강변했지만 결국 사퇴하고 말았다.

이번 사태의 전모는 앞으로 더욱 철저히, 명백하게 규명할 필요가 있다. 전에도 성희롱 발언 파문에 휘말린 적이 있는 한나라당을 비롯, 정치권 전체는 이번 일을 두고두고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