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 골수 기증 꺼려 기증자에 사례 허용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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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9면

최근 서울아산병원에선 사상 초유의 골수이식 수술이 시행됐다. 백혈병에 걸린 이모군(8)의 치료를 위해 부모가 일부러 딸을 낳았고 이 과정에서 생긴 탯줄과 태반에서 골수를 추출해 이식한 것이다. 골수를 얻기 위해 동생을 출산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이군은 매우 운이 좋은 경우에 속한다. 동생을 낳아도 동생의 조직형이 오빠의 것과 일치할 확률은 4분의 1에 불과하다. 4명의 동생을 낳아야 겨우 1명이 일치할 수 있다는 뜻이다. 또 탯줄과 태반에서 골수를 추출하려면 많은 비용이 소요되는데다 추출할 수 있는 골수의 양이 부족해 이군처럼 체격이 작은 어린이가 아닌, 덩치가 큰 성인 백혈병 환자는 치료할 수 없다.

글리벡이란 신약이 있다지만 이 역시 백혈병의 4가지 형태 중 한 가지에만 효과적이며 그나마 골수이식 수술보다 효능이 떨어진다. 따라서 아직까지 백혈병 치료의 최선은 다른 사람이 기증한 골수를 이식받는 것이라는 게 결론이다.

현재 골수 기증 의사를 밝힌 사람은 4만여명이다. 그러나 정작 자신과 조직형이 맞는 환자가 나타났으므로 골수를 기증해달라는 요청이 오면 5명 중 4명은 거절한다. 이러다보니 백혈병 환자 4명중 3명은 골수이식을 받지 못해 숨져야 한다.

골수를 기증하면 생명을 구할 수 있다. 그러나 기증자는 적어도 3일 이상 입원해야 하며 마취 하에 엉덩이 뼈에 주사바늘을 수 십 차례 꽂아야 한다. 뽑아낸 골수는 며칠내 대부분 회복되며 후유증도 없어 건강에 장애를 초래하지 않는다지만 기증자에게 신체적 부담이 되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입원하는 동안 직장이나 일도 그만둬야 하므로 경제적 손실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기증자에게 돌아오는 금전적 혜택은 없다. 현행 법상 골수 등 장기(臟器)를 돈으로 사고 파는 행위는 일절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장기 기증은 숭고한 도덕적 행위며 어떠한 대가도 전제되어선 안된다는 취지에서다. 그러나 여기에도 융통성은 필요해 보인다. 도덕보다 중요한 것이 생명이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익명의 기증자를 위해 수혜자가 최소한의 성의를 나타낼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 미국도 기증자에 대한 금전적 보상을 인정하는 제도를 추진 중이다. 골수 기증자가 1백만원의 보상을 받는다한들 누가 그에게 돌을 던질 것인가.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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