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이 있는 전북 해결사 추 운 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7면

누구나 살아오면서 어렵고 힘들었던 시절이 있게 마련이다. 예민한 감수성과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찬 소년기에 겪었던 그런 시절은 한 사람의 자아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프로 2년차 공격수 추운기(24·전북 현대). 그는 이제 프로의 맛을 조금씩 느끼면서 성장해가고 있는 차세대 스트라이커다.

지난달 7일 프로축구 K-리그 개막경기 안양 LG전에서 교체 투입돼 후반 41분 결승골을 터뜨린 데 이어 4일 부천 SK전에서도 인저리 타임이 적용된 종료 직전 극적인 결승골을 뽑아내 전북의 새로운 해결사로 우뚝 섰다.

당시 페널티지역 왼쪽 사각(死角)에서 그가 터뜨린 골을 두고 신문선 본지 해설위원은 "물리학적으로 골이 나올 수 없는 지점이었다. 그의 천부적인 골 감각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말이 없다. 사람들 앞에 나서기도 꺼리고, 무슨 말을 할라치면 얼굴부터 발그스레해진다. 그의 내성적인 성격은 어린 시절 늘 혼자였던 기억에서 비롯했는지도 모르겠다.

2남2녀의 셋째이자 장남인 그에게는 두살 위의 누나가 있다. 초등학교 시절, 그 누나에게 장애가 찾아왔다. 몸은 커가지만 정신연령은 유아수준으로 후퇴하는 정신지체 장애였다. 병원에서는 어떻게 손쓸 방도가 없다고 했다. 별다른 사고도 없이 갑작스레 찾아온 불행은 그의 집안을 온통 흔들어놓았다.

경기도 화성에서 염전을 하는 아버지는 딸의 치료를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여러 병원을 전전했고, 온갖 요법을 다 시도해봤다. 부모는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장남이면서도 추운기는 집안에서 관심 밖이었다. 부모가 챙겨줄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외로운 그에게 축구공은 최대의 벗이었다.

그는 축구에 상당한 소질을 보였다. 그러나 다니던 함산초등학교에는 축구팀이 없었다.

그는 부모를 졸라 홀로 서울 명신초등학교로 축구 유학을 떠났다. 초등학교 5학년생이 낯선 곳에서 혼자 지내는 것은 너무도 힘든 일이었다.

"학교 식당건물에 마련된 합숙소에서 혼자 잠을 청할 때면 눈물이 흘러 베개가 젖곤 했다"는 그는 외로움에 못이겨 몇차례나 축구를 그만두려고 했다. 그러나 가끔씩 찾아오는 어머니가 손을 꼭 잡고 하던 말 때문에 그러지도 못했다.

"조금만 더 해보다가 도저히 안되겠으면 내려 오렴. 그런데 네 누나는 이상하리만큼 네가 유니폼을 입고 있는 것만 보면 좋아하는구나."

추운기는 지금 국가대표를 꿈꾼다.

"누나는 말도 제대로 못하면서도 지난 월드컵 때 축구 경기를 보면서 너무 좋아했어요. 내가 태극마크를 달고 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그에게 축구는 누나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희망의 선물이다.

최민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