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석 “정권 재창출하자는 임 실장 제안에 합류 결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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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호 04면

3기 청와대 정무 라인을 이끌어갈 정진석 정무수석(왼쪽)과 김두우 기획관리실장. 정 수석은 3선 의원직을 던지고 차관급인 정무수석을 맡았고, 김 실장은 수석급인 정책기획관 제안을 거절하고 스스로 한 계급 강등된 비서관이 됐다. 신인섭 기자·연합뉴스

‘이명박(MB) 청와대’ 3기를 이끌어 갈 신(新)정무 라인이 떴다. 임태희 대통령실장과 정진석(정무)·홍상표(홍보) 수석, 김두우 기획관리실장이 그들이다.
선두에서 이끌어가는 건 임 실장과 정 수석이다. 두 사람은 공통점이 많다. 우선 둘 다 3선 의원 출신이다. 정치인 집안 출신이란 점도 닮았다. 임 실장은 민정당 대표를 지낸 권익현 한나라당 고문의 사위다. 정 수석은 6선 의원(민정당 사무총장·자민련 부총재)을 지낸 정석모 전 내무장관의 차남이다. 이런 정서적 공감대는 두 사람을 하나로 묶었다. 16대 때 나란히 국회에 들어간 두 사람은 당(임 실장은 한나라당, 정 수석은 자민련)은 달랐지만 가깝게 지냈다. 네 살 아래인 정 수석(50)은 지금도 사석에선 임 실장(54)을 ‘형’이라고 부른다.

3기 청와대 이끌어 갈 新 정무 라인 뜬다

3선의 현역 의원이 차관급인 정무수석직을 수락한, 흔치 않은 일이 일어난 데는 이런 인연이 작용했다. 지난 15일 국회 정보위원장실에서 정 수석을 만났다. 그는 “이제는 의원이 아니라 대통령 비서이기 때문에 말을 아끼는 게 좋다”며 조심스러워했다.

-3선 의원이 수석으로 옮기는 건 이례적인데.
“임 실장이 실장 내정을 받자마자 나한테 연락이 왔다. 꼭 나랑 같이 해야겠다는 거다. 우리가 힘을 합쳐 튼튼한 정권 재창출의 기반을 만들자고 했다.”

-그래서 받아들였나.
“두 번 고사했다. 세 번째 전화가 왔을 때 임 실장이 ‘사적인 것 다 버리고 진짜 나랏일 한번 해보자. 지금 나라가 어렵지 않나. 언제 이런 일 해보겠나. 니랑 나랑 죽을 둥 살 둥 한번 해보자’고 했다.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내가 거절한다면 비겁한 것 같았다. 그래서 ‘같이 한번 죽어보자’고 했다.”

-국회 본회의의 세종시 수정안 표결 땐 당론과 달리 반대표를 던졌는데 부담스럽지 않나.
“불과 2년 전까지 세종시 지역(충남 공주-연기) 대변자였는데 한나라당에 왔다고 해서 입장을 바꿀 순 없었다. 그건 정치인으로서 영혼을 파는 거다. 나에게 정치생명을 준 충청 유권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대통령도 이해해주시리라 믿는다.”

정 수석은 JP(김종필) 전 총리 문하에서 정치에 입문했다. 충청 출신이란 점이 작용했다. 지난해 작고한 선친이 공주에서 10~15대 의원을, 그 뒤를 이어 정 수석이 16~17대 의원을 지냈다. 18대 땐 한나라당에 입당, 비례대표가 됐다. 그는 한나라당 내 친이·친박계는 물론 야당과도 터놓고 지낸다. 3선을 하면서도 누구 사람이라거나 누구 계보란 소리를 듣지 않은 편이다.

그는 박근혜 전 대표와도 각별하다. 2008년 1월 한나라당에 입당했을 때 대통령 특사로 중국에 가있던 박 전 대표가 측근인 이정현 의원에게 전화해 환영 논평을 내게 했을 정도다. 박 전 대표는 ‘정진석 의원의 입당을 크게 환영한다. 당과 나라를 위해 크게 쓰일 인재다’라는 논평을 구술했고, 2시간 뒤 다시 확인 전화까지 했다고 한다. 정무수석에 내정된 뒤 그는 박 전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박 전 대표는 “가서 잘하세요”라고 덕담을 했다고 한다. “박 전 대표와 따로 만나 식사하거나 차 한잔 마셔본 적이 없다”는 그에게 박 전 대표가 신임을 보내는 이유는 뭘까. 그의 얘기는 이렇다.

“아버지를 도지사(강원·충남) 세 번, 내무차관, 치안국장(현 경찰청장)을 시키고 10대 때 공화당으로 출마하게 해 배지를 달아준 사람이 박정희 대통령이다. 공주고보 동기생인 JP를 견제하기 위해 아버지를 키운 거였다. 그걸 왜 박 전 대표가 모르겠나. 또 거점·전략지역인 충청권 출신이란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MB와의 인연은 19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MB는 민자당 전국구 의원, 정 수석은 출입기자(한국일보)였다. 대학(고려대) 후배이기도 하다. MB는 그를 “정 후배”라고 부른다.

이번 청와대 개편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김두우(53) 기획관리실장이다. 그는 직전 수석급인 메시지기획관을 지냈다. 그런데도 스스로 한 단계 낮은 비서관급인 기획관리실장으로의 ‘강등’을 자청했다.

당초 이 대통령은 김 실장에게 수석급인 정책기획관을 제안했다. 국정과제를 총괄하고 정책 홍보를 하는 자리다. 하지만 김 실장은 “정책은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며 고사했다. 대신 기획관리비서관을 자원했다. 대통령실장 직속인 이 자리는 국정상황 전반을 총괄 관리, 점검하는 곳으로 과거 정부 때의 국정상황실 역할을 한다. 이 대통령은 김 실장의 기용을 결정하면서 “(기획관리비서관을) 기획관리실장으로 이름을 바꾸라”고 지시했다. 스스로 비서관으로 강등한 데 대한 배려인 셈이다.

김 실장은 17일 기자와 통화에서 “정책기획관 제의를 받았을 때 청와대를 떠날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그동안 대통령이 내게 보여준 애정과 배려를 생각하니 도저히 그렇게 할 수가 없더라. 그렇다면 직급은 낮아지는 건 괜찮다, 아무에게나 맡기기 어려운 까다로운 자리에 가서 국정 전반을 열심히 챙기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실장에겐 과거 기획관리비서관보다 훨씬 힘이 실릴 전망이다. 과거 기획관리비서관이 했던 국정 전반에 대한 점검 외에도 메시지기획관이 하던 업무의 일부분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메시지기획관 시절 담당했던 대통령 이미지 통합관리(PI:President Identity) 업무는 앞으로도 김 실장이 계속 맡게 될 것으로 알려졌다. 경우에 따라선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효과적으로 홍보하기 위해 부분적으로 연설문을 작성하는 등의 일을 하게 될 수도 있다.

김 실장은 정부 출범 후 정무2비서관→정무기획비서관→메시지기획관을 차례로 맡으며 정무·홍보전략 등에 대해 깊숙이 관여했다. 국정 과제와 각종 현안에 대한 폭넓은 조언을 하는 이 과정에서 이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받게 됐다는 게 주변의 얘기다. 특히 지난해 DJ(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때 민주당 측의 국장(國葬) 요구를 전격 수용하는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다. 기자(중앙일보 정치부장·수석 논설위원) 출신인 김 실장은 청와대 내에서 정무적 감각과 전략적 마인드가 뛰어나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 감각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동관(홍보)·박형준(정무)·박재완(국정기획) 전 수석 등 경선 캠프 출신과 원년 청와대 멤버들이 대거 빠진 이번 개편에서 원년 멤버로선 유일하게 자리를 지킨 것도 이런 평가와 무관하지 않다.

홍상표(53) 홍보수석은 YTN 상무 출신이다. 정치부 기자를 지내 정무적 감각을 갖추고 있고 사회 각 분야에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점 등이 발탁 배경이 됐다.

“군정종식 내건 YS, 군부 손잡아 집권”
새로 짜인 3기 정무 라인은 수석비서관회의와는 별도로 내부 논의 체계를 갖게 된다. 임 실장과 정진석 정무·권재진 민정·홍상표 홍보수석, 김두우 기획관리실장이 정무팀을 이룬다. 이들 앞에 놓인 과제는 만만치 않다. 지방선거 패배와 세종시 수정안 부결에 따른 국정기조의 변화, 교육개혁·노사문제 등 표류 조짐을 보이고 있는 국정 과제들을 다잡아야 한다. 야당은 물론 당내 비주류인 친박계를 끌어안아야 하는 숙제도 풀어야 한다. 임 실장은 16일 “청와대가 의사소통이 안 됐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나도 이제 여러 사람을 만나겠다”고 말했다. 소통이 최우선 과제임을 지적한 것이다. 정 수석도 “국민이 바다면 정권은 일엽편주다. 대통령이 많은 분들과 소통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많이 만들겠다”고 했다.

갈등의 골이 깊어진 MB와 박 전 대표의 화합도 풀어야 할 과제다. 이와 관련, 정 수석은 “순리로 풀면 된다. 두 분은 함께 창출한 공동정권인 만큼 국정책임을 공유하고 있다. 파트너십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파트너십을 복원하기엔 너무 늦었다는 시각도 많다”는 기자의 질문엔 이렇게 답했다.

“군정종식을 내걸었던 YS(김영삼 전 대통령)가 어떻게 권력을 잡았나. 군부와 손잡아서 권력 잡은 것이다. 권력은 그냥 떨어지는 감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 쟁취해야 하는 거다. 감나무 밑에서 떨어지는 걸 바라선 안 된다. 최선을 다해 사다리 타고 올라가 자기가 직접 따야 한다. 분열하면 정권 넘겨준다는 건 자명한 이치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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