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우 기자의 까칠한 무대<33>딸린 식구가 몇인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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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호 05면

오디뮤지컬컴퍼니 신춘수(43) 대표. ‘미다스의 손’이라 불리며 최근 4∼5년간 화제를 몰고 다닌 국내 최고의 뮤지컬 제작자다. 그가 만든 작품을 살펴 보자. ‘지킬 앤 하이드’를 필두로 ‘그리스’ ‘맨 오브 라만차’ ‘올슉업’ 그리고 최근 ‘드림 걸즈’까지. 여기에 패셔니스타 뺨치는 깔끔한 외모는 “제작자도 스타가 될 수 있다”란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남들은 감히 엄두를 못 내던 ‘드림 걸즈’ 리바이벌 공연의 세계 초연 무대를 한국에서 가진 데 이어 뉴욕 진출까지 성사시켰다. 그의 도전과 패기는 무한질주하는 한국 뮤지컬의 아이콘처럼 부각됐다.

그 신 대표가 연출까지 손댔다. 12일 대학로 동숭홀에서 개막한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다. 제작을 잘하는 이가 연출도 잘하면 주변에선 얼마나 샘을 낼까. 그런데 샘 날만 했다. 작품은 깔끔한 편이었다. 특별한 스토리 없이 선문답 비슷한 대사와 노래가 대부분인 탓에 조금 지루한 면도 솔직히 있었지만, 뮤지컬계의 대체적인 반응은 “군더더기 없이 세련됐다”는 것이었다. 작품 개막일엔 마치 어워즈를 방불케 할 만큼 영향력 있는 극장 관계자와 투자자들이 총출동해 신 대표의 막강한 파워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 앞에서 자신이 연출한 뮤지컬을, 그것도 ‘싼티’ 나는 게 아니라 고급스럽게 보여주었으니, 신 대표 얼마나 뿌듯했을까.

그런데 이 지점에서 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신 대표가 꼭 연출할 필요가, 아니면 이유가 있었을까. 신 대표의 연출 외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3년 전쯤 ‘스펠링 비’라는 뮤지컬의 연출을 했다. 그때 신 대표는 “연출을 해보니 작품에 대한 이해도가 한결 높아졌다. 제작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아니 척박한 국내 풍토에서 제작자가 연출을 한 번쯤 하는 건 오히려 권장할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외도란 여유 있을 때 얘기다.

겉은 번지르르하지만 신 대표가 운영하고 있는 오디뮤지컬컴퍼니의 사정은 그리 녹록지 않다. 부채 규모가 30억원이니, 50억원이 넘느니 소문도 무성하다. 신 대표는 “난 쇠사슬(빚을 의미)에 묶인 몸”이라고 넋두리처럼 말하곤 한다. 그 쇠사슬이 어찌 신 대표 혼자 짊어질 일이랴. 그의 회사에 속한 직원만도 수십 명이며, 신 대표에게 코가 꿰여 투자하거나 돈을 빌려준 이들이 또 수십 명이다. 그들은 모두 신 대표가 어떤 흥행 결과를 낳느냐에 일희일비하고 있다.

자칫 신 대표의 회사가 부도라도 난다면, 신 대표가 파산 신청이라도 한다면 그 후유증은 한국 뮤지컬계에 재앙처럼 몰아닥칠 게 뻔하다. 그런 절박한 상황에 “연출 내가 하고 싶다”는 한가한 소리나 하고 있으니.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오프닝 파티에서 한 극장 관계자는 뼈 있는 한마디를 신 대표에게 툭 던졌다. “이제 연습실 그만 가고, 얼른 사무실로 돌아와야지.”

신 대표는 지금 티켓 한 장이라도 더 팔 궁리를 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제작비를 아껴 수익을 낼까로 머리를 싸매야 한다. 그런데도 연출을 계속 고집한다면 그는 이런 의심을 살지도 모른다. 어차피 남의 돈 투자 받은 것이니 망해도 손해 볼 거 없다는 모럴 해저드? 돈에 눈이 먼 천박한 비즈니스맨보단 우아한 아티스트가 되고픈 로망? 그런 의혹을 더 이상 받고 싶지 않다면 그는 지금 당장 연출 노트를 내려놓고 계산기를 두드려야 한다. 신 대표에게 연출은 사치다.


중앙일보 문화부 공연 담당 기자. '성역은 없다'는 모토를 갖고 공연 현장 구석구석을 헤집고 있다. 올해로 4회째를 맞은 ‘더 뮤지컬 어워즈’의 프로듀서를 맡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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