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서리제 폐지' 정치권 공감확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정치권에서 총리 임명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한나라당이 7·11개각을 계기로 "총리서리제는 위헌"이라고 이의를 제기해 문제가 불거졌지만, 이번 기회에 총리서리제 관행을 폐지하자는 주장이 다수다.

민주당 내에서도 이에 동조하는 의견이 많다.

노무현 대통령후보의 정동채 비서실장이 16일 총리서리제 개선의 필요성에 동조하고 나섬으로써 정치권의 인식 공유의 폭이 확산하고 있다.

◇'총리 대행체제'=총리서리제를 없애자는 데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법조 출신 의원들 다수가 공감하고 있다. 다만 구체적인 개선방법에 대해서는 조금씩 차이가 있다.

민주당 천정배(千正培)의원은 "전임 총리가 신임 총리내정자의 인준 때까지 잔류할 수는 있지만 이 경우 전임 총리가 사실상 업무를 수행하기 어렵다"며 "대통령이 총리내정자를 지명한 뒤 국회의 임명동의를 받을 때까지 대행체제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같은당 송훈석(宋勳錫)의원도 "부총리 등 총리를 대행할 수 있는 순서가 있으니 총리내정자는 국회 동의를 받은 뒤 활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김용균(金容鈞)의원은 "총리내정자가 국회 인준을 받을 때까지 전임 총리가 각료제청권 등을 행사해야 한다"면서 "총리를 긴급교체해야 할 경우 직무대행체제로 가면 된다"고 주장했다.

다른 의견도 있다.

민주당 박상천(朴相千)의원은 "서리제에 법적 문제가 있는 이상 개헌을 해 보완해야 한다"며 '개헌을 통한 원천적 해결'을 강조했다.

한나라당 윤여준(尹汝雋)의원은 "여야관계가 원만치 않을 경우 총리 교체가 쉽지 않다"면서 "서리제도를 완전히 없애긴 어려울 것"이라는 현실론을 폈다.

◇새정권 첫 총리가 문제=새정권이 출범하면서 첫 총리내정자를 발표하고 국회의 임명 동의를 받을 때까지의 공백을 어떻게 메울지가 문제다. 총리가 임명돼야 총리의 제청을 받아 장관들을 임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이주영(柱榮)의원은 "신임 대통령이 총리를 지명하되, 형식상 전임 대통령을 통해 국회에 임명동의를 요청해 새 대통령 취임 직전에 총리 인준절차를 마치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민주당 천정배 의원도 "집권 후 첫 내각은 당선자가 총리와 장관을 미리 내정하고 대통령 취임 이전에 이를 인준하는 절차를 거치면 될 것"이라며 비슷한 의견을 냈다.

한나라당 최병렬(崔秉烈)의원은 "정권 초기에는 국회가 빨리 총리 임명동의안을 처리해주고 그때까지는 차관들이 장관을 대행하는 게 좋다"는 주장을 폈다.

◇"총리서리제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한 단면"=정치권이 이구동성으로 총리서리제 관행에 제동을 걸고 나선 이유는 이것이 '제왕적 대통령제'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총리서리제 개선을 통해 대통령의 위헌소지가 있는 권한 행사에 제동을 걸고 국회의 권한을 되찾자는 의미도 담겨 있는 셈이다.

현행 헌법 제86조는 '국무총리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적시하고 있고, 국회법도 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국무총리·감사원장·대법관과 헌법재판관·중앙선관위원에 대해 국회에서 인사청문회를 열도록 돼 있다.

이는 국회의 인사청문회와 임명동의 절차를 거치기 전에는 공식적인 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는 뜻이다. 우리와 같은 대통령제를 택한 미국에서도 인사청문회를 거치지 않고는 그 직(職)에 취임하거나 권한을 행사하지 못한다.

김종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