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다 창고가 홍업씨 '비밀금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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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권과 관련된 중소기업체의 돈뿐 아니라 대기업으로부터도 '활동비' 명목으로 20억원이 넘는 돈을 받은 것으로 검찰 수사에서 확인된 대통령 차남 김홍업(金弘業)씨의 돈 관리는 아주 특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별로 문제될 것이 없다던 말과는 달리 홍업씨 주변의 돈거래 규모와 양태는 상식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그는 이런 돈을 보관하고 '세탁'하는 데도 각별한 방식으로 주의를 기울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홍업씨측은 기업체의 돈을 받을 때 개인 사무실은 물론 룸살롱·호텔 주차장 등도 활용했다.

현대그룹 명예회장이던 정주영씨로부터 10억원을 10만원권 수표로 받을 때는 자신의 역삼동 개인 사무실을 이용했고 이재관 새한그룹 부회장측으로부터는 7억5천만원을 리츠칼튼호텔 지하 주차장에서 받았다.

또 주공 사장으로부터 청와대 내사사건 무마 청탁과 함께 2천만원을 받은 장소는 최고급 G룸살롱이었다. 받은 돈은 주로 헌 수표와 현금이었지만 차명 예금통장도 있었다.

김홍업씨측이 기업체로부터 받은 돈은 총 48억원이 넘고 이중 홍업씨에게 전달된 돈은 30억원이 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는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B아파트 104동 1102호 자택 베란다 창고를 기업체로부터 받은 돈을 보관하는 비밀 금고로 이용했다. 삼성·현대의 돈 22억원과 선거 활동비 등으로 받은 10여억원 대부분을 이곳에 넣고 가구를 쌓아 대충 가린 뒤 1년 이상 보관했다.

김홍업씨는 이 금고에 돈이 어느 정도 모이면 자신이 부이사장으로 일하는 아태평화재단에서 행정실장을 맡고 있던 김병호씨 등을 동원해 차명계좌에 분산 입금한 뒤 새 수표로 인출해 다시 그곳에 넣기도 했다.

金실장 등은 홍업씨와 친인척 등의 관계가 전혀 없는 사람들의 명의로 개설한 16개 차명계좌에 나눠 입금한 뒤 역시 1백만원권 수표로 찾아 다시 홍업씨에게 건넨 것으로 검찰수사에서 드러났다.

홍업씨측에선 돈을 금융기관에 맡기지 않고 집에다 보관하는 것은 정권의 감시를 받는 야당 정치인 아들이었기 때문에 생긴 습성이라고 설명한다. 별다른 소득이 없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로부터 자주 금전적 도움을 받았는데, 도움을 준 사람들이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되도록 돈을 노출시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홍업씨는 1998년 10월 난생 처음 실명계좌를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검찰의 계좌추적 과정에서 홍업씨는 실명계좌에 큰 돈을 입금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이런 홍업씨의 행동이 비리를 감추고 세금 부과를 회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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