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재부-복지부 싸움에 ‘의료 선진화’ 후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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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를 산업으로 키워야 한다고 나선 사람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 그런 시각은 역대 대통령 중 처음이었다. 그걸 실행한 사람은 노무현 정부 초대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김화중 장관이다. 그는 2003년 3월 “병원 산업을 육성하라”는 노 전 대통령의 지시를 받고 그해 5월 “인천 송도에 동북아 중심병원을 세우겠다”고 선언했다. 2005년에는 서비스산업 관계장관회의와 의료산업 선진화위원회가 생겼다. 거기서 의료 산업화 방안들이 논의됐다.

현 정부에서 실적으로 내세우는 의료채권제·첨단복합의료단지 등이 거기서 나온 것들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투자개방형 병원의 결론이 난 것은 아니었다. 유시민 전 복지부 장관은 “정도 이상으로 이념 대립이 너무 심하다”며 추진을 잠정 보류했다.

현 정부도 의료 선진화정책을 이어받았다. 2008년 3월 기획재정부 윤증현 장관이 “투자개방형 병원을 도입하겠다”며 불을 댕겼다. 그러다 그해 쇠고기 관련 촛불시위 때 ‘의료산업화=의료민영화’로 몰리면서 대폭 후퇴했다.

당시 주무부처인 복지부는 의료산업화가 민영화와 분명히 다르며, 우리의 건강보험 틀을 바꿔 민영보험과 경쟁하려는 게 아니라고 설득하지 않았다.

이전 정부에서 의료산업화를 추진하던 복지부는 현재는 투자개방형 병원 반대의 선봉대가 됐다. 윤 장관은 ‘강력 추진’을, 전재희 복지부 장관은 ‘절대 반대’를 주장하며 충돌하고 있다. 전문기관 용역까지 해서 도입 여부를 따졌지만 결론을 못 냈다. 정책에서 시작한 대립이 감정 싸움으로 치닫는 양상이다. 두 부처는 끝장토론을 하며 문제를 풀려 시도한 적도 없다. 이런 모습 때문에 투자개방형 병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됐고 노무현 정부 때보다도 정책이 후퇴한 상태다.

특별취재팀 신성식 선임기자, 허귀식·김정수·안혜리·서경호·황운하 기자, 박소영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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