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때 IMF 구제책 필요 이상 가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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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국제통화기금(IMF)이 미국 워싱턴DC에 본부가 있고 직원 중 미국·유럽 출신이 많아 서구 중심의 문화적 편향이 있는 것 아닌가요?”

12일 대전에서 열린 아시아 콘퍼런스에 참석한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IMF 총재가 아시아 대학생들과의 타운홀 미팅에서 받은 질문이다. 타운홀 미팅이란 일정한 주제들에 대해 참석자 모두가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는 미국식 공개토론 방식을 말한다. 스트로스칸 총재는 “IMF 인적 구성에서 아시아와 아프리카 출신을 늘리는 등 조직의 다양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지만 완전히 성공하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아시아를 향한 구애=이날 스트로스칸 총재는 오전 콘퍼런스 환영사를 시작으로 첫 번째 세션 패널 참여, 언론 브리핑, 대학생과 타운홀 미팅, 한국 언론 인터뷰 등 숨가쁜 일정을 소화했다. 1990년대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IMF의 가혹한 정책 처방 탓에 고통받은 아시아인의 트라우마(마음의 상처)를 위로하려는 말도 많이 했다.

그는 “IMF가 아시아의 ‘제2 고향’이 되겠다”고 했다. 아시아를 중심으로 신흥국의 IMF 쿼터(지분)를 늘리고 아시아 출신이 더 많이 일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그는 개막연설에서 “아시아의 시대가 도래했다”며 “아시아의 경제 실적이 의미 있는 성장을 지속할 것이라는 데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시아가 글로벌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세계 경제의 새로운 동력으로 떠오른 만큼 “(아시아 등 신흥경제권의 IMF) 투표권 확대의 두 번째 단계를 11월 서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까지 마무리할 계획으로 추진 중이며 이 개혁을 통해 아시아는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합당한 대표권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90년대 후반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에 했던 구제금융책에 대한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그는 “IMF가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했던 정책은 여러 국가에 상당히 성과가 있었으며 이 때문에 이번 위기를 잘 견딘 면이 있다”며 “그러나 당시 IMF 구제책이 굉장히 고통스러웠고 필요보다 더 심했을지도 모른다는 교훈을 배웠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IMF는 해야 할 것을 하면서도 조금 덜 고통스럽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아시아 외환위기를 통해 알게 됐다”며 “이런 점을 그전에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이지만 당시 한국이 고생했더라도 헛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외환 규제엔 일침=한국 등 개발도상국이 외환시장의 자본 유·출입에 대해 규제하려는 움직임에 대해선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그는 12일자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부과하고 있는 자본시장 규제가 장기화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자본시장에 대한 단기 규제는 어떤 경우에는 필요하다”고 전제하면서도 “장기 규제는 확실히 좋은 것이 아니다”고 못 박았다. 최근 한국과 인도네시아, 브라질 등이 부과한 외환시장 규제를 일부분 이해할 수 있지만 영구적인 규제로 정착돼서는 안 된다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풀이된다.

일부 개도국이 직면한 인플레 압력에 대한 언급도 했다. 그는 이날 개막연설에서도 아시아 정책 입안자들이 유럽 위기 등과 같은 위험요소를 감안해 앞으로 다가올 수 있는 충격에 적절히 대응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전=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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