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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크 '막강 대통령'된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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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16일 실시된 프랑스 총선 결선 투표에서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이끄는 대통령여당연합(UMP)등 중도 우파가 압승을 거둠으로써 유럽연합(EU) 15개 회원국 중 우파가 집권한 나라가 10개국으로 늘어났다.

오는 9월 실시될 독일 총선에서 야당인 기민당이 사민당을 누르고 집권할 경우 유럽 대륙의 우경화(右傾化)는 돌이킬 수 없는 대세로 굳어질 전망이다. 여론조사는 기민당의 승리를 예상하고 있다. 경기 침체와 치안·고용 불안, 사회 안전망의 약화로 누적된 좌파정권에 대한 실망과 염증이 민심을 오른쪽으로 돌려놓고 있는 것이다.

중도 우파의 승리로 시라크 대통령은 지난 5년간의 좌·우 동거 정부를 청산하면서 국정 전반에 걸쳐 막강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그동안 시라크는 사회당의 리오넬 조스팽 총리에게 실권을 내준 채 '의전 대통령'에 머물러 왔다. 시라크 대통령은 총선을 승리로 이끈 장 피에르 라파랭(53)총리를 17일 총리로 재지명하고, 조각을 위촉했다.

◇라파랭 총리=지난달 대통령에 재선된 시라크가 총리로 지명할 때만 해도 라파랭은 거의 무명 정치인이었다. 1995~97년 알랭 쥐페 내각에서 중소기업장관을 지낸 것말고는 이렇다 할 중앙 정치무대 경력이 없다. 하지만 노회한 시라크는 서부 푸아티에 출신의 '시골뜨기' 상원 의원을 전격 발탁해 총리로 기용하는 승부수를 던졌고, 이는 파리 출신 정치 엘리트들의 권력 독식에 식상한 국민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갔다.

라파랭은 시라크나 조스팽 등 대부분의 프랑스 정치 엘리트들이 나온 국립행정학교(ENA)출신이 아니다. 경영학 전문대학을 졸업한 뒤 커피 제조회사의 마케팅 담당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한때 홍보회사를 운영하기도 했다. 정계 진출 후에도 대부분 지방 정치무대에서 활동했다.

하지만 그의 평범한 경력과 소탈한 이미지는 오히려 국가의 의사결정이 국민 편에서 이뤄질 수 있다는 기대감을 불어넣었다. 프랑스 신문 만평에서 라파랭은 늘 장바구니와 바게트빵을 들고 있는 마음 좋은 아저씨로 묘사된다. 민생을 중시한다는 이미지를 심어주는 데 성공한 셈이다. 실제로 그는 총리로 취임한 이후 사회당과의 이념논쟁을 피하는 대신 시장바닥을 누비고 다녔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프랑스인들의 64%가 "라파랭 정부가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좌파 지지자들도 절반 정도는 라파랭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러한 평가가 중도 우파의 승리에 기여한 것은 물론이다. 앞으로 그가 세금 감면과 치안 확보 등 각종 공약을 어떻게 실천할지 주목된다.

파리=이훈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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