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展'이름 무색 허전한 서울도서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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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지난 11일 세계 22개국 1천5백여개 출판사가 참가했다는 '서울 국제 도서전'(7~12일)을 가봤다. 전시장인 코엑스 태평양관으로 들어가는 정문 통로는 같은 건물에 있는 월드컵 취재 기자들을 위한 인터내셔널 미디어 센터의 보안을 위해 차단막이 처져 있었고, 곳곳에 경찰이 배치돼 삼엄한 분위기였다.

전시장에 부스를 만들어 놓은 한 출판사 직원은 "월드컵 때문에 가족 관람객이 줄어 지난해에 비해 매출은 절반 정도"라고 했다.

서울 국제 도서전이 국내 저작물의 해외 판권 시장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느냐는 비판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주최측도 이런 점을 의식해서인지 해외 출판사 유치에도 힘쓰고 '한국 문학 번역 출판 국제 워크숍'을 여는 등 활로를 모색했다. 이와 함께 '자녀들과 손을 잡고 갖가지 책 구경하세요'라는 컨셉트를 부각해 국제 도서전을 온 국민의 책 잔치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이런 주최측 노력에도 불구하고 출판사들은 "부스당 임대료만 1백40만원을 냈는데 인테리어 비용 등을 포함해 부스 제작비도 건지기 힘들게 됐다"고 밝혔다.

저작권 판매가 이뤄져 실익을 거둘 수 있어야 하는데 지난달 베이징 국제 도서박람회가 성공적으로 열린 직후라 가까운 일본·중국 출판사들의 참여율도 낮고 판권 계약을 대행하는 에이전시들도 좀체 눈에 띄지 않는다는 설명이었다. 뿐만 아니라 전시장에서 이뤄지는 관람객의 직접 구매도 줄었으니 출판사로서는 신이 날 리 없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인문·교양 관련 출판사와 출판물은 줄고 어린이책·교재·교구가 전시장을 휩쓸고 있어 국제 도서전으로서 모양새가 영 안 난다는 것이었다. 한세트에 1백28만원 하는 미취학 아동 영어 교재와 수십만원짜리 지능 발달 교구들이 전시장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으니 국제 도서전이라는 타이틀 대신 '어린이 책·교재 전시회'라 해야 더 어울릴 것 같았다.

한 출판사 편집장은 "국제 도서전이 제대로 방향을 잡기 위해서는 불교·동양학·정보기술(IT) 등 우리가 특화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 관련 출판물 전시를 대폭 늘려 다른 국제 도서전과의 차별화를 꾀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제 도서전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주최측은 이런 출판계의 고언을 귀담아 들었으면 한다.

홍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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