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cover story] 다섯달 뒤엔 꼬옥 안아줄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3면

▶ 설령 카드를 읽어준다 해도 전혀 알아듣지 못할 희원이. 하지만 엄마의 사랑은 담뿍 느낄 수 있지 않을까.[권혁주 기자]

지난 17일. 서울 독산동에서 외할아버지.외할머니와 함께 사는 희원이(6개월.여) 앞으로 이라크에서 군사우편 소포가 왔다. 안에 든 것은 아기 신발과 옷, 장난감 등. 간호장교로 지난달 초 이라크에 간 엄마 고미연(24) 중위가 보낸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고 중위는 임신 전에 이라크 근무를 자원했다가 희원이를 낳고서 4개월 뒤 현지 근무 발령을 받았다. 동생 주연(22.이화여대 과학교육4)씨는 "언니가 떠나기 전날 희원이를 꼭 안고는 입술을 깨물고 있는 게 서운한 기색이 역력했다"고 말했다. "크는 모습을 봤으면 좋겠는데…"라고 혼자 중얼거리기도 했단다. 하지만 스스로 지원한 일. 군인으로서 책임감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을 뒤로 하고 이라크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희원이 아빠(양훈모)도 해군 장교로 경남 진해에 있어 희원이는 외가에서 자라고 있다.

고 중위는 매일 한차례씩 집에 전화해 딸과 통화한다. 물론 희원이는 아직 말을 못한다. 하지만 지난 11일 희원이가 수화기에 대고 "음므므므"한 것을 놓고 "분명히 '엄마'라고 했다"고 부대 안에 자랑을 하고 다녔단다. 또 '6개월밖에 안 됐는데 엄마를 부르는 우리 딸은 천재'란 글을 자이툰부대 홈페이지(www.zaytun.mil.kr) '위문편지'코너에 올려 놓았다.

친정어머니에게는 매일 자기 사진을 희원이에게 보여 달라고 했다. 혹시 6개월 근무를 마치고 돌아갔을 때 희원이가 엄마를 못 알아볼까봐 걱정해서다.

희원이가 엄마에게서 받은 선물 꾸러미에는 크리스마스 카드(사진)도 한 장 들어 있었다. '더 좋은 선물을 주고 싶지만 상황이 안 돼서 그런 거니 이해해 줘. 내년 크리스마스 때는 엄마가 꼭 함께 있어 줄게. 엄마가 희원이 얼~마나 사랑하는 지 알지?'라는 내용이었다.

설령 카드를 읽어준다 해도 전혀 알아듣지 못할 희원이. 하지만 엄마의 사랑은 담뿍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권혁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