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위기 동·식물'로 지정만 해놓고 보호·관리"나 몰라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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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제주도와 남해안 도서지방에서 자라는 한란. 환경부가 멸종위기 식물로 지정해 놓은 것이다. 하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어린 싹까지 채취해가는 바람에 학자들이 정확한 서식 규모를 파악하기도 전에 사라지고 만다.

정부나 자치단체에서 야생식물 보호 대상·지역을 지정하면서 구체적인 관리대책을 마련하지 않아 오히려 생존을 위협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특히 정부가 멸종위기 동·식물로 지정한 43종 가운데 한란·광릉요강꽃, 보호 야생 동·식물로 지정한 1백51종 가운데 털개불알꽃·파초일엽 등은 불법 채취로 자생지가 심하게 훼손되고 있다.

지난 8일 녹색연합은 안면도 꽃박람회와 고양 꽃전시장에서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및 보호식물이 불법 전시되고 있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환경부는 "전시자들이 인근 농장에서 인공 증식했거나 노점상에서 구입했다고 주장해 유통 경로를 추적 중"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야생에서 채취한 것과 인공 증식한 개체를 구별할 수 없기 때문에 불법 채취와 유통을 단속하기가 쉽지 않다.

국민대 김은식(산림자원학과)교수는 "멸종위기 야생 동·식물 리스트가 오히려 돈벌이나 우선적 소유 대상 리스트가 돼 이들 동·식물을 싹쓸이 하도록 만든다"고 지적했다. 생태계보전지역이나 특정 무인도서 지정도 마찬가지다.

현재 전국에 생태계보전지역은 모두 15곳이 지정돼 있다. 그 규모도 1백12㎢에 이른다. 하지만 관리 인원은 10여명에 불과하다. 특히 지리산 심원계곡·피아골과 대암산 용늪, 낙동강하구 을숙도 등은 일반인의 접근이 어렵다는 이유로 관리인을 한명도 배치하지 않았다. 산불감시 수준의 공익요원 외에는 전담 관리 인력이 없는 곳도 많다.

정부는 2000년 47개 섬을 생태계 보존을 위한 특정 무인도서로 지정됐고 지난달 39곳을 추가 지정했다. 그러나 정부는 안내간판만 하나씩 설치했을 뿐 모든 관리를 해당 시·군에 맡겼다. 그러나 예산·인력 면에서 시·군이 철저하게 관리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 관리하는 전국 18개 국립공원의 면적은 6천1백86㎢. 전체 현장 직원이 5백82명이기 때문에 한명이 무려 10.6㎢(3백21만평)를 관리하는 셈이다.

공단 관계자는 "국립공원의 경우 대부분 높은 산지나 바다로 이루어져 있어 직원 한 사람이 여의도 면적의 3.7배를 관리하기에는 어려움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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