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 30주년 맞은 경남대 극동문제硏:'대북정책'이론적 뒷받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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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북한연구의 기초를 닦은 것은 물론 화해·협력에 바탕을 둔 연구의 중추적 역할을 해온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소장 고병천)가 창립 30주년을 맞았다. 7·4남북공동성명의 흥분이 채 가시기도 전인 1972년 9월에 설립돼 이제 교수 10명에다 상임·비상임 연구위원이 1백여명에 이르는 국내 최대의 북한 연구·교육기관으로 자리잡은 이 연구소는 정책연구기관으로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극동문제연구소는 개소 30주년, 북한대학원 개원 5주년을 기념해 오는 22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미국 조지 타운대와 공동으로 '정상회담 이후의 한반도:2년간의 성과와 전망'이라는 주제의 학술회의를 개최한다.

이 학술회의에는 로버트 갈루치 미 조지타운대 국제대학원장, 웬디 셔먼 울브라이트그룹 고문 등 주변 4강의 전·현직 한반도 정책 담당자들이 참석해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를 평가한다.

"북한을 아직 '괴뢰'라고 할 때, 냉전적 사고 방식에서 벗어난 참신한 시각의 북한연구자를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 연구소를 학계가 공인하는 최고의 북한연구기관으로 만든 것은 박재규 북한대학원장의 이런 선견지명이었다.

'반공'수준의 북한연구를 '화해·협력'을 키워드로 하는 객관적인 과학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당시로선 쉽지 않았던 생각도 이제 학계에서는 일반적인 것이 됐다.

연구소를 설립한 뒤 가장 먼저 북한관련 자료 수집에 매달렸던 것도 북한연구를 과학화하자는 의도에서였다. '당시 중앙정보부의 간섭에 시달렸음에도' 많은 학자들이 이 연구소의 자료를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였다.

다음 단계는 이념적 편견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젊은 연구자를 모으는 것이었다. 학위를 받고 귀국한 젊은 연구자들에게 조건 없이 연구실을 제공, 학문적 교류를 하도록 유도하는 객원연구위원 제도를 통해 국내 북한 연구인력의 네트워크를 만들어 갔다.

서동만(상지대)·권호연(일본 호세이대)·김용호(연세대)·김수진(이화여대)·신욱회(서울대)·유석진(서강대)등 이제는 쟁쟁한 중견 연구자가 된 사람들이 이 연구소 연구위원 출신이며, 지금도 평소 10명 전후의 연구자들이 이 제도를 이용하고 있다.

냉전시대의 금기를 깨고 마르크스주의 연구자를 처음으로 국내에 초청한 것도 극동문제연구소였다. 1989년 10월 서울에서 개최한 '전환기의 세계와 마르크스주의'라는 주제의 학술회의에 그때까진 책으로만 접했던 위르겐 쿠진스키·프레드릭 제임슨·이매뉴얼 월러스틴 등 쟁쟁한 외국의 마르크스주의 학자들을 초청, 학계를 놀라게 했다.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이 연구소에서 발행하는 『한국과 국제정치』는 국내 최고의 권위있는 학술지로 인정받고 있다. 85년에 창간, 매년 2회씩 통권 36호를 발행한 이 잡지는 남북한의 대내외정치와 한반도 주변정세를 다루고 있으며, 창간 30주년을 맞아 계간지로 전환할 예정이다.

이론 연구를 넘어 정책에 직접 영향을 미치기 위한 작업은 90년대 중반부터 본격화되었다.

96년부터 월 1회씩, 지금까지 약 70회를 개최한 '통일전략포럼'은 정·관계 통일정책 담당자와 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현안을 토론해왔고, 이를 통해 대북정책 및 통일전략에서 정·관·학계의 합의를 유도해왔다. 창립 5주년이 된 북한대학원이 최고의 전문대학원으로 자리잡게 된 것도 이런 바탕 위에서 가능했다.

연구소는 요즘 국내외 인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북한 연구·교육은 물론 본격적인 정책연구기관으로 변모하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다. 시설·인력 확충은 물론 정책과 별개로 진행되었던 연구·교육을 정책에 직접 개입하는 연구·교육으로 전환하기 위한 내부 작업에 들어갔다. 해외 저명 정책기관과의 네트워크 구축도 본격화되고 있다.

이를 통해 대북정책이 이념갈등으로 비화하는 것을 막고 실용적 입장에서 정·관·학계의 정책적 합의를 이끌어내자는 것이다.

김창호 학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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