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노트] 브루스 커밍스, 와다 하루키, 박명림 … 6·25를 보는 다른 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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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브루스 커밍스를 바라보는 감회가 새롭다. 1981년 출간된 그의 『한국전쟁의 기원』의 파장은 대단했다. 군부독재에 대한 저항이 폭넓은 지지를 얻던 80년대 대학가에서 그의 책은 ‘재야 교과서’였다. 책 제목은 역설적이다. ‘한국전쟁의 기원’을 따져보려는 게 아니었다. “누가 방아쇠를 먼저 당겼느냐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그는 주장했다. 그가 볼 때 한국전쟁은 내전이었다. 1930년대부터 계속된 내부 분쟁을 마감하는 전쟁이었다.

80년대를 풍미한 그의 주장은 오늘날 설득력을 잃고 있다. 커밍스의 ‘제왕적 지위’는 구 소련이 붕괴하며 약화되기 시작했다. 커밍스가 참고한 자료는 풍부했지만 미국 자료에 국한됐다. 90년대 중반 이후 구 소련 정보국 문서가 공개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소련의 스탈린, 중국의 마오쩌둥, 북한 김일성의 기습적 남침이었음이 속속 밝혀졌다.

해방전후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씨가 뿌려진 것은 이때부터다. 와다 하루끼, 박명림 교수는 커밍스 이후 연구의 한 축을 담당하는 이들이다. 박 교수는 96년 출간한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에서 북한의 남침임을 분명히 했다. 커밍스의 연구를 존중하면서도 남침 부분에서는 선을 그은 것이다. 와다 하루키 교수는 6·25를 동북아시아 국가 전체가 참여한 일종의 국제전으로 파악하는 점에서 커밍스와 차이를 보인다.

커밍스 자신도 이 같은 변화를 잘 알고 있었다. “책을 낼 당시 소련과 중국의 문헌을 볼 수 없었다”고 인정했다. 자신의 책에 대한 비판이 많음도 알았다. 강연 도중 간간이 김일성의 선제적 남침을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본래 그의 주장을 철회할 생각은 없다고 했다. 이날 강연이 아쉬운 것은 이 대목이다. 역사 연구는 사실 규명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역사의 해석은 사실 이후의 문제다. 2000년대 들어 6·25에 대한 보수 진영의 새로운 인식이 잇따라 나오고 있는데 이들과의 대화가 좀 더 전면적으로 이뤄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오늘의 연구는 보수 진영이 공격적으로 주도하고 있기에, 양측의 대화 속에서 내일의 새 연구도 가능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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