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전 걱정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8면

1998년 프랑스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한국은 중국과 평가전을 서울에서 벌였다. 이 평가전은 한마디로 살벌했다. 공한증(恐韓症)에 시달리던 중국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한국을 꺾기 위해 거친 플레이로 무장해 한국전에 나섰다. 한국은 월드컵 본선을 대비하고 있었으나 이미 월드컵 예선에서 탈락한 중국은 부담없이 싸울 수 있었다.

당시 경기는 1-1로 비겼고 한국의 간판 스트라이커 황선홍은 이 경기에서 입은 무릎 부상 탓에 정작 월드컵 본선에서는 줄곧 벤치만 지켜야 했다. 그리고 한국축구와 차범근 감독의 몰락을 가져오는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4년이 흐른 지금 한국은 월드컵 본선을 불과 30여일 앞두고 또 중국과 A매치를 갖게 됐다. 한국대표팀은 최종 엔트리 23명 선발을 코앞에 두고 모든 선수들이 긴장과 고도의 경쟁 속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중국경기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과도한 긴장과 스트레스는 부상을 불러오는 결정적인 원인이 된다. 그래서 축구계 일각과 많은 팬들 사이에서는 한·중전의 일정이 확정된 후 평가전 재고와 무용론이 강하게 대두됐다. 그러나 이미 정해진 일정으로 인해 '이겨도 본전'인 손해 보는 경기를 치를 수밖에 없다.

통상적으로 큰 대회를 앞두고 평가전을 할 때는 본선에서 만날 팀과 유사한 스타일이나 전술적인 특징을 갖고 있는 팀을 골라 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본선에서 맞붙을 팀(폴란드·미국·포르투갈)과 색깔이 분명히 다른 중국과의 평가전에 대한 논란은 결과(승·패 혹은 부상 발생 등)에 따라 재현될 여지가 크다. 이 시점에서 중국전을 강행한 축구협회의 잘못을 꼬집고자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어차피 치를 수밖에 없는 중국경기에 대한 리스크(위험요인)를 줄여보자는 의미에서 얘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기고 지는 것은 조정이 불가능하지만 양국 협회가 협의를 통해 심판원들이 부상을 예방할 수 있도록 경기의 룰을 엄격히 적용하도록 경기 전까지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며칠 전 축구협회의 조중연 전무가 심판원들에게 과열된 분위기로 인해 부상이 발생하지 않도록 협조를 요청하겠다고 의견을 밝혔다고는 하지만 이 것으로는 부족하다. 양국의 협회가 부상방지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확인하는 절차가 꼭 필요하다. 그래야 밀루티노비치 감독과 중국선수들에 대한 확실한 고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너무 예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할 수 있지만 중국이 한국을 기필코 이기겠다는 의지와 더불어 정신력 강화를 부르짖는 상황은 곧 거칠고 살벌한 전술운용으로 나올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분명한 것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을 수 있는 한·중전'을 잘 치르는 것은 월드컵에서 가장 중요한 첫 경기인 폴란드전 이상으로 중요하다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시집가기 전날 등창 난다'는 속담이 어느 때보다 떠오르는 것은 이 경기가 중국과의 경기이기 때문이다.

<중앙일보 축구해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