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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에 지친 日本선 지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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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남는 시간에 알아서 부업을 해도 좋다"(회사)

"퇴직금이 당장 필요하니 내 사표부터 먼저 받아달라"(종업원). 경기침체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일본에선 요즘 이런 희한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임금을 깎는 대신 직원들을 부업전선에 나서게 하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퇴직금을 더 얹어주겠다는 기업에선 '퇴직경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회사가 장려하는 부업=미쓰비시(三)전기는 이달부터 공장이 일주일 이상 휴업할 경우 종업원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을 허용하기로 했다. 휴업수당을 기본급의 90%에서 80%로 낮추기로 한 데 따른 보상차원이다.

히타치(日立)도 지난해 11월부터 워크셰어링(일감 공유)을 도입한 반도체공장에 한해 여유시간이 날 때 아르바이트를 허용하고 있다.

비공식적으로 부업을 인정해오던 오키(沖)전기도 직원들의 반응이 좋자 오는 9월부터 부업을 제도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회사측은 직원사기를 진작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평가한다.

니가타현의 신코전기는 "휴업이 많고 급여가 줄었으므로 모자라는 부분은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내에서 부업을 하라"고 장려하고 있을 정도다.

이에 따라 연봉의 3분의 1쯤을 부업으로 벌어들이는 사원들도 적잖다. 휴업이 불규칙하므로 정규직은 어렵고, 음식점 주방일이나 야간의 공사장 잡역 등 일용직 부업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퇴직도 좁은 문=일본 기업들이 인원삭감을 위해 실시하고 있는 희망퇴직자 모집에는 예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지난달 말 희망퇴직자 모집을 마친 히타치의 경우 당초 계획(4천명)의 배가 넘는 9천명이 쇄도했다. 5천명의 퇴직자를 모집한 도시바(東芝)에서도 8천명이 몰려들었다. 또 현재 희망퇴직자를 모집 중인 마쓰시타(松下)전기·마쓰다·미쓰비시(三菱)자동차 등에서도 계획을 훨씬 웃도는 퇴직 희망자들이 몰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들은 희망퇴직의 경우 정규 퇴직에 비해 최고 2.5배의 퇴직금을 주고 있다.

◇노사관계 변화 오나=불황 탓으로 종신고용제를 바탕으로 애사심을 요구해온 기업들의 자세가 먼저 바뀌고 있다.

기업은 경비와 이익을 따져야지 정부가 담당해야 할 사회복지 기능을 떠맡을 수는 없다며 냉정하게 돌아서고 있는 것이다.

취업규정상 부업을 엄격히 금지해온 일본 기업들이 이례적으로 부업을 허용한 것도 타산적인 노사관계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월급을 깎을 테니 싫으면 나가고, 있겠으면 부업으로 알아서 용돈이라도 벌라는 것이다. 근로자들도 제 살 길을 찾고 있다. 오키전기의 경우 함께 비슷한 부업을 하던 직원들이 퇴직해 작은 회사를 차리기도 했다.

또 외국계 헤드헌팅 회사들에 이력서를 내미는 사무직 근로자들도 급증하고 있고, 이들을 위한 전문잡지도 잇따라 창간되고 있다.

도쿄=남윤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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