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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보다는 사람을 남겨라' 한국대표 CEO 성장 관행 깨는 '모난 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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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해외 투자가가 가장 좋아하는 최고경영자(CEO)." "이거다 싶으면 결정 내리고 드라이브를 거는 스타일." "뿌린 대로 거두라는 신조가 몸에 밴 농군의 아들."

김정태(55·사진) 국민은행장을 나타내는 키워드는 몇가지 더 있다. 원칙주의·역(逆)평등주의의 실천과 주주 중심의 경영. 인사·경영상의 외압을 거부하며 수익을 올려주는 직원에겐 연공서열이 낮더라도 많은 연봉을 줘야 한다는 지론을 실천하고, 주주의 이익 극대화를 경영 판단의 기본으로 삼는다.

'앵글로색슨 경영자'들에게는 친숙할지 모르나, 공동 운명체를 지향하는 일본식 경영 풍토가 만연한 한국 은행계에서는 생소한 선택들이다. 그러나 저돌적인 스타일에 대한 우려를 잠재우고 동원증권·주택은행·국민은행의 CEO로 승승장구한 김행장은 "한국 금융이 구조조정이 미진한 일본 은행을 앞질렀다"는 외국 언론 평가의 중심에 서 있다. "이익만이 최우선인 장사꾼"이라는 칭찬 반, 폄하 반의 평가는 제쳐두고 그가 한국의 간판 CEO라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선진경영하면 제너럴 일렉트릭(GE)의 잭 웰치부터 들이대는 관성에서 벗어나 한국의 김정태에게도 눈길을 돌릴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간 한국의 CEO 모델이란 그룹 창업자, 몇몇 전문경영인, 벤처 기업가 등으로 군색했던 게 사실이다.

한국 기업에서 경영 수완만 가지고 회사를 옮겨가며 몸값과 이름값을 올린 CEO로 김행장은 흔치 않은 존재다. 그는 올해 안에 스톡옵션을 행사해 1백억원 가까이 벌면 절반을 떼어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혔다. 노블레스 오블리제까지 과감하게 실천하겠다고 하니 그에 대한 연구서가 되레 늦은 감마저 든다.

미국 온라인 서점 아마존에서 잭 웰치를 검색해 보면 약 30권의 관련서가 쏟아져 나온다. 최근의 자서전 『잭 웰치-끝없는 도전과 용기』부터 『GE 경영방식의 야전교본』까지 있다. 유리알처럼 투명한 회계, 관료주의를 버리자는 혁신, 창의성을 전제로 한 1등주의 등등 김행장의 CEO 덕목도 그만큼 연구할 가치가 있다. 따라서 미국에 'GE 방식(GE Way)'이 있듯 '김정태식'이 개혁 바람을 불러 일으켜 다른 기업과 경영자들의 창조적인 모방으로 이어지려면 김정태 연구가 선행되야 한다. 일간지 경제부 차장 출신인 저자의 작업은 여러모로 의미 있다. '김정태식'이 확대 재생산되기를 기대하되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역력하다. 김행장의 육성을 일대일 대면으로 듣기보다는 연설·기사 등을 참조해 분석하려는 점이 그렇다.

한국 사회에서 모난 돌이 성공한 케이스인 김행장의 행적은 어떤 것일까. 동원증권 당시 무차입 경영을 선언해 외환위기라는 폭풍을 피하고, 주택은행장을 맡아 선진회계 기준을 적용한 4천5백억원 적자 발표로 오히려 투자가들에게 신뢰를 얻고, 1등을 다지고 해외로까지 뻗어나갈 심산으로 국민은행과의 통합을 결행하기까지. 김행장의 성공은 천운이 따랐을 수 있으나 관행을 깨부수는 역발상이 효과를 발휘한 때문이다. 본점의 인사권·예산권을 지점에 나눠주고 9·11 테러로 주가가 폭락했을 때 증시가 무너지지 않는다는 확신 아래 1조원을 쏟아 부은 것도 역발상이다.

자연인 김정태는 또 어떠한가. 중농 집안의 7남매 중 맏이로 태어나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성격을 지녔고, 17년째 주말 농장에서 푸성귀를 재배하며 자녀들에게도 과외 한번 시키지 않았다.

"정도를 가는 원칙주의자, 주주와 시장 중심의 경영자, 현실적인 개혁주의자, 청빈한 일상인"(윤경희 ING 베어링스 코리아 대표)이라는 평가가 앞으로의 경영에서도 힘을 발휘해 한국 대표 CEO로서 성공적인 귀결을 이뤄내길 바란다.

홍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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