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이철호의 시시각각

목포의 눈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8면

이미 충남 서해안은 한국 최대의 기업 벨트로 변신했다. 아산·탕정의 삼성전자와 서산의 석유화학단지, 그리고 당진의 현대제철까지 해안을 따라 들어섰다. 기업은 도시 판도까지 바꿔놓았다. 천안은 3~4년 전만 해도 아산과 행정통합에 손사래 쳤다. 가난한 아산은 한숨을 쉬었다. 지난해 말 여론조사 결과는 상전벽해(桑田碧海)다. 주머니가 두둑해진 아산 주민의 81%가 천안과의 통합에 반대한 것이다. 삼성전자의 뭉텅이 세금 덕분에 재정자립도가 천안을 추월해 충남 지역 최고를 기록했다. 그야말로 ‘다이내믹 충남’이다.

광주와 전남은 정반대의 분위기다. 노무현 정부의 혁신도시 후유증으로 중환자나 다름없다. 새 아파트 단지 숲마다 ‘분양가 할인+양도세 감면’ 플래카드가 나부낀다. 악성 물량인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가 4000가구에 육박한다. 분양가를 1억원 깎아주는 광경도 흔하다. 지금 광주 경제는 기아차와 삼성전자 가전공장에, 전남은 여수 석유화학단지와 광양제철에 의지하는 신세다. 지방 경제의 중추신경이라는 건설업계는 완전히 망가져 버렸다. 도급순위 1위인 금호아시아나는 워크아웃 중이다. 2위 남양건설과 3위 금광기업은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4위 대주건설은 간신히 퇴출 위기를 넘겼고, 5위인 삼릉건설은 파산했다. 성한 기업을 찾기 어렵다. 4월 광주의 부도율은 전국 최고였다. 이들 부도업체에서 밀려난 건설인력과 중장비들이 영산강 살리기에 투입되면서 그나마 숨통이 트였다.

그러나 영산강 사업은 단순한 일자리 차원을 넘어선다. 광주에서 나주를 지나 목포까지 내려가다 보면 함부로 영산강 살리기를 반대하기 어렵다. 광주 주변에선 폭 100m가 넘는 하상(河床)에 5m 남짓한 실개천이 흐를 뿐이다. 그것도 광주 하수처리장에서 내보낸 물이다. 강 둔치엔 모래가 엄청나게 쌓였고 잡초들만 무성하다. 30㎝ 굵기의 버드나무들이 숲을 이룬 곳도 적지 않다. 큰비가 오면 물길을 막아 언제 제방이 넘칠지 불안하다. 목포 하구둑으로 내려갈수록 영산강의 수량(水量)은 넉넉해지지만 악취가 코를 찌른다. 농업용으로도 꺼림칙한 4급수다. 영암과 무안의 유기농 농민들은 대부분 지하수를 파서 쓴다.

박준영 전남지사는 쉰 목소리를 냈다. 그는 “민주당의 당론과 다른 게 가슴 아프지만, 영산강을 이대로 둘 수는 없다”고 했다. 지역 환경단체들은 천막 농성을 하면서 박 지사를 압박하고 있다. 박 지사는 영산강 지킴이들의 답사를 쫓아간 적이 있다고 소개했다. “그들도 광주까지는 지킬 강물조차 없다는 걸 알았다. 나주 밑으로 내려가면서 모두 악취를 피해 강을 멀찌감치 우회했다”는 것이다. 박 지사는 “시간이 지나면 결국 영산강 살리기를 이해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와 전남에는 유난히 새 도로가 많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열심히 길을 닦은 덕분이다. 2017년에는 KTX까지 연결된다. 그러나 당진과 비교하면 기업 유치나 일자리는 하늘과 땅 차이다. 광주의 인구는 2013년부터 감소한다. 목포는 9년 만에 간신히 인구 감소를 면했지만, 전남 인구는 200만 명 밑으로 떨어진 지 오래됐다. 영산강 사업을 계기로 광주·전남 살리기의 큰 그림을 그릴 때가 아닌가 싶다. 민주당보다 한나라당 집권 때 입안해야 훨씬 빛나는 청사진이다. 언제까지 ‘목포의 눈물’을 부를 수는 없다. 이미 6·2 지방선거에서 현지 민심은 미묘한 변화를 보였다. 의외로 이명박 대통령이 영산강 승촌보에서 4대 강 기공식을 한 장면을 좋게 기억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이철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