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영화 "엘프"…왜 어른이 되고 나면 산타클로스 믿지 않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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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앞으로 며칠 남지 않은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는 캐럴이 삭막한 도심을 포근하게 껴안는 요즘이다. 구세군의 자선냄비에도 교통카드로 돈을 내는 디지털 세상이지만 아기 예수의 평화와 사랑을 기억하는 성탄절은 다분히 아날로그다. 사람과 사람의 정을 생각하고, 세파에 잊어버렸던 꿈도 떠올리는 시기다.

15일 개봉하는 '엘프'(원제 Elf, 감독 존 파브로.사진)는 연말 맞춤형 영화다. 동화같이 순수하고, 백설 같이 깨끗한 마음이 펼쳐진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불룩한 보따리를 들고 굴뚝으로 들어와 세상의 어린이에게 선물을 풀어놓는 산타클로스를 믿지 않는, 즉 세상 물정을 알고부터 그런 얘기는 애들이나 좋아하는 동화일 뿐이라고 치부하는 어른들을 다시금 유년 시절로 데려다 주는 '착한' 영화다.

'엘프'는 영화 '비지터'와 '빅'을 합쳐놓은 듯하다. 중세에서 현대로 넘어온 기사를 그린 '비지터' 시리즈의 해프닝과 갑자기 어른이 된 아이가 장난감 공장 사장이 되는 '빅'의 유머를 버무린 푸근한 코미디다. 구성.내용 등의 참신함은 도드라지지 않으나 그 안에 담긴 따뜻한 마음과 정겨운 웃음 덕에 처음부터 끝까지 흐뭇한 기분으로 즐길 수 있다. 어린 자녀의 손을 잡고 극장 나들이를 하기에 제격이다.

요정을 뜻하는 제목 '엘프'는 영화에서 산타클로스를 도와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하고, 손재주가 뛰어난 난쟁이를 가리킨다. 그들은 매일 매일을 크리스마스처럼 지내며, 크리스마스의 기쁨을 전하기 위해 큰 소리로 캐럴을 부른다.

주인공은 고아원에서 태어났으나 산타클로스의 실수로 엘프 나라에서 성장한 버디(윌 페럴). 동화 '미운 오리 새끼'처럼 난쟁이 엘프 사이에서 자란 그가 나이 서른에 자신이 인간임을 알게 되고, 친아버지 월터(제임스 칸)를 찾아 대도시 뉴욕으로 여행을 떠난다.

이후 발생하는 숱한 해프닝. '인간의 규칙'을 모르는 버디는 지하철 출입구에 붙은 껌을 떼어 씹고. 대용량 콜라를 한숨에 들이키고는 엄청난 트림을 하고, 성탄절 백화점에 있는 산타클로스는 가짜라고 소리치는 등 귀여운 소동을 벌인다.

하지만 영화는 어디까지나 꿈과 사랑의 회복을 선언한다. 코믹 에피소드는 단지 소품일 뿐. 버디는 산타클로스를 믿지 않는 일벌레 아버지와 웃음을 잃어버린 백화점 소녀 조비(주이 드샤넬) 등 주변 인물의 닫힌 마음을 활짝 열며 가족과 사랑, 그리고 믿음의 힘을 새롭게 일깨워준다. 아이들 앞에 장사 없는 것처럼 순진한 영화 앞에선 감상평도 무기력하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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