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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땅'아프간 희망의 싹을 찍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8면

지난 21일 밤 '칸다하르'의 시사회장은 엄숙했다. 오지여행 전문가에서 국제 난민운동가로 변신한 '바람의 딸' 한비야씨가 관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미사일·총알로 했던 아프가니스탄의 전쟁은 끝났다. 앞으론 사랑·약품·식량의 전쟁을 해야 한다."

한씨의 말은 지난해 뉴욕 9·11 테러 사건 이후 세계 영화계의 관심을 집중시킨 '칸다하르'(1일 개봉·하이퍼텍 나다·02-766-3390)의 메시지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영화는 테러가 일어나기 전 탈레반 정권 밑에서 신음했던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현실을 시적인 영상과 다큐멘터리적 사실성으로 담아내 화제가 됐다. 칸다하르는 아프가니스탄 사태 때 자주 보도됐던 탈레반 지도자 무하마드 오마르의 고향. 이란 영화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모흐센 마흐말바프(45)감독을 e-메일로 인터뷰했다.

'칸다하르'의 구성은 간단하다. 내전 중에 조국을 탈출해 캐나다에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는 나파스(닐로파 파지라)가 개기일식이 있는 날 목숨을 끊겠다는 편지를 고향에 남은 여동생에게서 받는다. 이후 나파스는 여동생의 자살을 막기 위해 목숨을 건 사흘간의 칸다하르 여행에 나선다.

9·11테러前 현지 촬영

1987년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을 다룬 '싸이클리스트'를 연출했던 마흐말바프 감독은 이번에 직접 아프가니스탄으로 들어가 비극의 현장을 낱낱이 포착했다.

"이란 국경에서 2㎞ 정도 떨어진 곳에서 촬영했습니다. 경비가 삼엄해 매일 촬영 장소를 바꿨어요. 저도 현지인으로 위장했죠. 암살 혹은 납치를 당할 위험에 둘러싸였던 것입니다. 한번은 누가 다가와 마흐말바프가 어디서 영화를 찍고 있느냐고 물은 적도 있었습니다."

'칸다하르'는 이 시대의 도덕 교과서로 읽힌다. 어떤 영화에서도 제대로 다뤄진 적이 없는 아프가니스탄의 처참한 현실을 주목하면서 전쟁과 기근의 땅인 이곳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호소하기 때문이다.

"아프간인은 오늘날 지구촌에서 아무런 역할을 맡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떤 특별한 상품이나 과학적 업적, 혹은 예술적 성취를 보여준 게 없죠. 지금도 엄존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절망을 드러내려고 했습니다."

교육운동 지원 동참을

영화에선 벼랑 끝에서도 희망을 찾으려는 몸부림이 느껴진다. 지뢰를 밟아 수족의 일부를 잃은 사람들이 적십자 비행기가 떨어뜨린 의족을 차지하기 위해 목발을 짚고 달려가고, 남편을 잃은 아낙네들은 그나마 한끼 식사를 해결해주는 학교에 아이들을 들여보내려고 갖은 애를 쓴다.

"중간에 그만두고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기근에 허덕이는 난민촌에 한달간 식량을 공급한 적도 있었죠. 하루 하루가 슬픈 날이었고, 새로운 비극을 목격하는 날이었지요."

'칸다하르'에선 영화적 픽션과 다큐멘터리적 사실성이 사이 좋게 맞물린다. 아프가니스탄의 처참한 오늘을 재현하되 감독은 요란한 총성과 흥건한 피 대신 형형색색의 부르카(아프간 여성들이 전신을 가려 입는 의상)와 나직하게 깔리는 이슬람 음악으로 역사의 상처를 감싸안는다.

"절대 정치적인 작품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중심은 휴머니즘이죠. 1천만명의 여성이 얼굴조차 없이 살아가는 곳, 이것만큼 초현실적 현실이 또 있겠습니까."

감독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폭격을 비판했다. 탈레반이 위험한 정부인 것은 사실이지만 폭격은 이 나라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 정말 필요한 것은 경제를 회생시키기 위한 적극적인 지원이라고 강조했다.

마흐말바프는 요즘 감독보다 사회운동가로서 더 분주하다. 아프가니스탄 회생의 일환으로 교육운동에 헌신하고 있다. 그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인 '아프간 알파벳'도 완성했다.

"지난해 말 내전에 불탄 여학교를 보수해 교육사업을 시작했습니다. 피폐한 나라를 일으키는 데는 교육이 가장 실질적인 작업이 아닐까요. 깊은 잠에 빠진 지구촌의 인류애가 되살아나길 기원합니다."

지난해 '칸다하르'를 국내 처음 소개했던 부산영화제측도 아프가니스탄 돕기 코너를 영화제 홈페이지(www.piff.org)에 개설해 놓았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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