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유학 보내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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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우리 가정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아마도 아이들의 교육문제일 것이다. 국내의 교육제도에 불만인 많은 가정에서 여건이 되면 초·중·고교에 재학 중인 자녀를 외국에 유학 보내고 있으며, 또한 많은 부모들이 이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정확한 통계를 잡기는 어렵겠으나 교육개발원에서 나온 한 자료에 의하면 초·중·고교 재학 중에 외국으로 유학가는 학생은 매년 1만~1만2천명 정도 되는 것으로 집계돼 있다. 이 중에는 부모가 해외주재로 나가서 아이들을 동반하는 경우도 있으나, 이 가운데도 해외주재는 수단이고 아이들 유학이 주목적인 경우도 있을 것이다. 어찌됐건 1998~99년에 주춤했던 조기 유학이 재작년부터 다시 크게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 조기유학생 중에서 고교재학생은 20% 정도밖에 되지 않으며 나머지는 초등학교 재학생이 약 45%, 중학교 재학생이 나머지 35%를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외국에 나가 있는 조기유학생의 수는 적어도 5만~6만명일 것으로 추정되며, 이들이 학비로 1년에 평균 2만달러를 쓴다고 가정하면 총 비용은 연간 10억 내지 12억달러가 된다.

사실 10~15세의 어린 자녀를 외국으로 유학 보낸다는 것은 부모로서는 보통 어려운 결정이 아닐 것이다. 좀더 질이 높은 교육을 받기 위해서, 또한 국내에서 많은 과외비를 부담하고도 좋은 대학에 입학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어렵게 조기유학을 보낼 것이다. 그리고 유학 가면 영어라도 제대로 할 테니까 보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인 부담 말고도 아이들의 유학으로 인해 부모와 자식, 또는 아버지와 나머지 가족이 몇 년간 떨어져 살아야 한다는 것은 돈으로 헤아릴 수 없는 엄청난 고통임에 틀림없다. 10대의 청소년기는 국내에서도 사회적응의 문제가 있는 시기인데 여기에 외국이라는 생소한 환경까지 더해진다면 아이들 본인들도 매우 힘들 것이다. 또한 초등학교나 중학교부터 외국에서 학교를 다닌다면 정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그 나라 사람이 된다는 점도 고려돼야 한다. 아울러 아예 외국에서만 산다면 모르겠으나, 나중에 국내에 다시 온다면 영어 못지않게 우리 말을 잘하는 것도 사회생활 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부모들로서는 다시 한번 조기유학의 장·단점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조기유학의 문제를 사회적으로 재조명해 본다면, 문제의 핵심은 국민들이 자기나라의 교육시스템에 만족하지 못하고 엄청난 경제적 및 가정적인 부담을 안고 어린 아이들을 외국으로 내 보내야만 하는 교육제도의 실패에 있다. 현재 우리의 교육은 질이 낮고, 불필요하게 경제적인 부담이 크며, 그럼에도 장래를 예측할 수 없이 불확실성이 큰 데에 문제가 있다. 그리고 그러한 문제의 근원은 '교육평준화'라는 잘못된 목표에 매달려 공·사립을 막론하고 국민의 필요를 무시한 채 획일적인 교육제도를 전국민에게 강요하는 교육정책의 기본 방향이 잘못된 데서 찾을 수 있다.

지금부터라도 교육정책의 목표를 '수월성과 소비자의 선택'에 두고, 적어도 고등학교부터는 학교에 자율권을 주고 학생과 학부형에게 선택권을 주어야 한다. 입학시험을 보는 학교, 영어로만 강의하는 학교, 사이버교육으로 혁신을 하는 학교, 외국대학으로의 입학을 목표로 교육시키는 학교 등 학교가 알아서 교육방향을 정하게 하고, 학생들에게는 이들 다양한 학교 중에서 자기에게 알맞은 학교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현재 외국에 있는 학교가 제공하는 교육내용이 국내에서도 제공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 국민은 부모와 자식이 헤어져 있지 않고도 원하는 수준과 형태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정부가 무슨 근거로 질 좋은 교육을 받고자 하는 국민의 기본 권리를 침해할 수 있는가?

경제위기 이후 우리 사회는 빠른 속도로 성과주의로 나가고 있다. 70년대의 논리로 고교평준화를 고집하지 말고 이제부터라도 '수월성과 선택'이라는 새로운 교육패러다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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