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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로 보는 세상] 虎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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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중국의 춘추전국(春秋戰國)시대에 왕(王)이 군 지휘관을 현지에 파견하면서 들려 보내던 게 있다. ‘호부(虎符)’다. 구리(銅)로 만든 것인데 호랑이 모양을 하고 있어 ‘호부’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일종의 임명장에 해당한다. 이 호부는 한 쌍으로 돼 있다. 호랑이 한 마리를 만든 뒤 이를 둘로 나눈다. 그중 하나는 지휘관이 현지에 부임할 때 갖고 가고, 나머지 하나는 왕이 보관하는 식이었다. 현장에 나가 있는 지휘관이 군사를 이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왕이 갖고 있는 호부와 자신의 호부가 일치되는지 확인한 후 시행해야 했다. 이는 왕이 내린 명령인지를 확인하는 과정인 것이다. 두 개의 병부가 일치돼야 군을 이동할 수 있다는 말에서 ‘부합(符合)’이라는 말이 생기기도 했다.

호랑이는 예로부터 용맹의 상징이었다. 고대 한자사전인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호랑이를 ‘산짐승의 왕(山獸之君)’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용맹이야말로 군인의 최고 덕목인 셈이다. 호랑이 같은 용맹함으로 군을 경영하라는 뜻이었다. ‘호(虎)’는 호랑이가 웅크리고 있는 모습의 상형문자로 갑골문에도 나온다.

호랑이가 등장하는 성어는 많다. 그중 호시탐탐(虎視耽耽)은 주역에 나오는 말로 역사가 깊다. 호랑이가 온몸을 웅크리고 먹잇감을 노리고 있는 모습이다. 이 밖에 숨어 있는 인재를 뜻하는 와호장룡(臥虎藏龍), 제왕의 품격을 보여주는 호보용행(虎步龍行), 남의 위용을 등에 업고 행세를 부린다는 뜻의 호가호위(狐假虎威) 등 호랑이의 위용을 내세우는 성어가 적지 않다.

특히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도 무섭다(苛政猛於虎)’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호랑이는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월드컵 시즌이다. 허정무 감독이 올 초 대표팀의 담금질에 들어가면서 한 말이 바로 ‘호시탐탐, 호시우보(虎視耽耽, 虎視牛步)’였다. ‘먹잇감을 노리는 호랑이가 되겠지만, 소걸음 걷는 식으로 서두르지는 않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었다. 이번 주말 한국대표팀은 그리스와의 첫 경기를 시작으로 월드컵 장정에 돌입한다. 대한민국 전사들이 호시탐탐 노려왔던 먹잇감인 그리스와 맞부딪치게 되는 것이다. 대표팀 가슴에 있는 호랑이가 승리의 포효를 할 수 있기를 모든 국민이 기대하리라.

한우덕 중국연구소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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