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자유무역 누구와 손잡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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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선언적 의미에서의 한.일 동반자 관계는 이미 3년 전에 시작됐지만 진정한 의미에서의 동반자 관계는 2002년부터라고 생각한다. 올해는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의 해이기도 하지만 앞으로 동북아는 물론 동아시아와 전세계의 역학관계에 엄청난 변화를 야기할 한.일 자유무역협정(FTA)을 성사시킬 수 있는 둘도 없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 日과 먼저 FTA체결해야

세계 유일의 공백지로 남아 있던 동북아에도 이미 지역주의의 회오리가 불어닥치기 시작했다. 동아시아 경제권의 창설이라는 원대한 비전 아래 중국.일본.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3자가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FTA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미 국민적 공감대가 이뤄져 가고 있다. 한국이 고려할 수 있는 대상국들은 이미 FTA 협상에 돌입한 칠레를 포함, 싱가포르.태국.일본.중국.미국 등 다수의 국가들이다. 이들 중에서 한국이 가장 서둘러 FTA를 추진해야 할 국가는 바로 이웃 나라인 일본이다. 이에는 다음과 같은 경제.정치.전략적 이유가 있다.

첫째, 우리나라의 총수출을 가장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는 FTA 대상국가가 바로 일본이라는 점이다. 그동안 일본과의 FTA는 대일 무역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할 것이란 점이 지나치게 강조돼 왔다. 그러나 일본과의 무역수지가 비록 악화되더라도 전세계에 대한 수출을 확대, 총무역수지를 개선할 수 있다면 일본과의 FTA는 긍정적으로 평가돼야 한다.

둘째, 일본과 FTA를 체결하지 않을 경우 그 기회비용이 아주 클 수 있다.한.일 양국 산업간에 경쟁이 치열해져 가는 가운데 과도한 중복투자, 수출가격의 경쟁적 인하 등으로 양국 기업은 상당한 손실을 보고 있다. 따라서 한.일 FTA의 체결은 양국 기업들간에 전략적 제휴를 유도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 만약 일본이 한국보다 대만.아세안 등과 먼저 FTA를 체결할 경우 이로 인해 한국이 보는 손실은 막대할 것이다.

셋째, 일본의 상황을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FTA는 상대가 있는 만큼 상대국의 체결의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일본은 한국을 가장 적절한 FTA 상대국으로 평가하고 있다. 일본은 주요 수출산업에서 한국과의 과열 경쟁을 해소해야 하며, 장기불황에서의 탈출과 소자고령화(少子高齡化)의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자기완결형(full set) 산업구조에서 서비스 및 고부가가치 부문에 특화하는 산업구조로 전환하지 않으면 안된다.

현재 일본은 구조조정 추진과 전략적 제휴의 협력대상국으로서 아시아 국가 중 경제규모나 기술수준 측면에서 한국이 가장 적합하다고 보고 있다. 상대국이 우리와 FTA 체결을 절실히 원할 경우 우리에게 보다 유리한 방향으로 협상을 추진할 수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넷째, 한.일 FTA는 정치.전략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다. 즉 일본과의 FTA는 장차 미국.중국.아세안 등과의 FTA 체결을 위한 중요한 포석이 될 수 있다. 한.일 FTA보다 한.중 FTA가 우리에게 더 유리하다는 주장이 있다. 물론 한.중 FTA가 성립된다면 경제적으로는 한국에 가장 유리하다.

*** 中 ·동남아 끌어들일 포석

그러나 불리한 입장에 서 있는 중국으로서는 당장 이에 응할 수 없으며, 한국으로서도 농업부문에 전면적인 타격을 받게 되므로 손쉽게 응할 수 없는 대안이다. 이에 비해 한.일 FTA는 그 자체가 한국에 이익이 될 뿐 아니라 그 다음 단계인 한.중.일 FTA에 중국을 끌어들이는 첩경이 될 수 있다. 한.일 FTA를 우선 체결하고, 이를 중국 및 동남아와의 FTA로 연계해 궁극적으로 동아시아 FTA를 달성하는 것이 한국의 입장에서는 가장 현실성 있는 전략이라 하겠다.

1998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방일을 계기로 논의가 시작된 한.일 FTA는 양국 업계의 의견수렴을 위한 '한.일 FTA 비즈니스포럼'으로 이어졌고, 이 포럼은 이달 25일 도쿄(東京)에서 양국 정부에 한.일 FTA의 추진을 건의하는 내용의 결의문을 채택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일간의 진정한 동반자 관계의 첫출발이 될 한.일 FTA, 그것은 동북아 경제공동체의 첫 출발이기도 하다. 이 원대한 비전의 실현은 이제 오로지 정부와 국민의 결단만 기다리고 있다.

洪裕洙(대외경제정책硏 연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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