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에세이] 아인슈타인과 언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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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5면

오늘날 과학의 내용을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리는 데 언론만큼 커다란 영향력을 지닌 매체를 찾아보기 힘들다.

과학기술이 전문화하면서 내용이 점점 난해해졌기 때문에 과학기술을 쉽게 소개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과학기술 분야에서 스타 과학자를 만들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스타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과학의 역사상 대중적 인지도가 가장 높고 언론의 주목을 많이 받은 이는 아인슈타인이었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데에는 그가 과학자로서 탁월한 업적을 남겼기 때문이지만, 그를 영웅으로 만든 언론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1916년 3월 20일 아인슈타인은 『물리학 연보』에 자신의 최대 업적인 일반 상대성이론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요즘도 일반 상대성이론은 이 분야에 종사하지 않는 과학자들은 이해하기 힘들 정도이기 때문에 이 논문이 액면 그대로 아인슈타인을 20세기 최대의 과학자로 만든 것은 아니었다.

아인슈타인이 유명해진 배경에는 아인슈타인을 국제주의적인 차원에서 옹호했던 영국 과학자들과 '아인슈타인 효과'와 관련된 관측을 대서특필했던 언론의 역할이 컸다.

19년 영국에서는 '아인슈타인 효과'를 확인하기 위한 일식 관측대가 조직됐고, 그 해 5월 29일 두 팀의 일식 관측대들은 이 효과의 존재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최초의 사진들을 얻어냈다. 이 때 얻은 관측 결과는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확실하게 입증하기에는 너무 오차가 커서 논란의 여지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년 11월 6일 긴급 소집된 영국 왕립학회와 왕립 천문학회 합동 회의에서는 아인슈타인의 예언이 확증됐다고 발표했다.

다음날 런던 타임스는 이 내용을 '과학의 혁명/새로운 우주론/뉴턴주의는 무너졌다'라는 식으로 대서특필했으며, 과학계에서만 알려졌던 아인슈타인은 일약 대중적인 유명 인사가 됐다. 20세기를 통틀어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친 아인슈타인의 신화는 이렇게 시작됐다.

이후 아인슈타인은 미국을 방문할 때 요즘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처럼 카퍼레이드까지 할 정도로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다. 아인슈타인은 탁월한 연구자였을 뿐만 아니라 언론을 가장 효과적으로 이용한 과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아인슈타인을 연구할 때 그의 학문적 세계만이 아니라 그가 언론을 어떻게 활용했는가도 관심을 가지고 살펴봐야 한다.

임경순 포항공대 인문사회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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