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 썰물’ 막기 3단계 작전 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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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외환 썰물 현상, 근원적으로 해결할 방법은 없는가. 정부가 해법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남유럽 악재와 한반도 긴장 고조가 맞물리면서 한국을 빠져나가는 자본이 많아진 탓이다.

일부 학자는 이런 문제가 아시아 신흥국의 통화가 국제금융시장에서 주요 결제 통화로 이용되지 않아서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원인이 무엇이든 아시아 국가들은 급격한 자본 이동에 대응해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는 목표로 외환보유액을 쌓아 왔다. 비상금을 쌓아두고 자본이 썰물처럼 빠져나갈 때 뽑아 쓴다는 계산이었다. 기획재정부 임창룡 제1차관은 “1997년과 2008년의 아픈 경험이 자기보험적 성격의 외환보유액 축적을 촉진하게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글로벌 차원에선 일종의 불균형이다.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를 바탕으로 아시아 국가들이 벌어들인 외화를 쌓아두는 바람에 불균형이 발생했다는 것이 선진국의 주장이다. 신흥국들도 위기 발생 가능성만 낮아진다면 많은 비용을 지불하면서 굳이 외환을 쌓아둬야 할 까닭이 없다. 진동수 금융위원장은 “외환보유액 확대 요인이 사라지면 신흥국이 소비와 투자를 확대할 수 있고 이는 세계 경제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급격한 자본 유·출입 문제는 일국 차원에서 다룰 것이 아니라 개별국가·지역·글로벌 등 3차원에서 입체적으로 풀어야 한다는 데 국내외 전문가의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정부도 해결 방향을 ‘입체 대응’으로 잡았다. 국내에서 단독 대응하기엔 부족하니 국제공조를 강화하자는 것이다. 국제공조도 아시아와 글로벌로 나눠 2단계 방어선을 모색하고 있다.

◆확산되는 규제론=개별 국가 차원에서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방안은 자본 유·출입을 직접 통제하는 것이다. 태국·대만·말레이시아 등이 이런 방법을 활용하고 있다. 최근엔 정부 관계자들도 잇따라 급격한 자본 유·출입에 대한 규제 필요성을 언급했다. 진 위원장은 지난 19일 “대외 불안요인이 발생할 때마다 마음을 졸이는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국내 외화유동성 부문에 문제는 없는지, 추가로 필요한 대비책은 무엇인지 다시 한번 꼼꼼히 챙겨볼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앞서 임 차관도 18일 “원활한 실물경제의 흐름을 저해하지 않으면서도 급격한 자본 유·출입이 시스템 전체의 위기로 전이되지 않도록 거시감독 차원에서 선제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선물환 규제나 토빈세·은행세 부과 등이 검토되고 있다. 재정부 김익주 국제금융국장은 “오래 전부터 마련해 둔 위기별 대응 시나리오가 있지만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백지 상태에서 대응방안을 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시아 지역 공조 강화=아시아 국가가 집단적으로 대응하는 방법이 있다. ‘아세안+한·중·일 재무장관회의’는 97년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외환 썰물 현상에 맞설 수 있는 체제와 금융협력을 모색해 왔다.

첫 결실은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다. 위기 국가에 대해 긴급자금을 지원하는 체계다. 1200억 달러 규모의 비상금을 마련해 두고 각 나라가 위기 때 미리 정해진 금액까지 뽑아 쓸 수 있게 한 것이다. 지난 3월 24일 정식 발효했다. 이달 초 우즈베키스탄에서 열린 재무장관회의에서는 역내 국가의 경제상황을 정밀 모니터링하는 ‘경제감시기구(AMRO)’를 싱가포르에 만들기로 했다.

다른 하나는 역내 여유자금을 역내 투자로 연결시키기 위한 ‘아시아채권시장발전방안(ABMI)’이다. 역내 발행 채권에 보증을 제공하는 ‘신용보증투자기구(CGIF)’가 설립돼 올 하반기부터 운영될 예정이다. 이로써 아시아 지역 차원에선 위기를 예방·감시·방어하는 안전장치가 마련된 셈이다. 단계적으로 CMI 비상금 규모를 늘리는 것도 중장기적으로 논의될 수 있다.

◆글로벌 안전망 모색=글로벌 차원에서는 안전망 논의가 초기 단계다. 선진국들은 급격한 외환 유·출입을 걱정할 이유가 별로 없어서다. 우리나라는 올해 주요 20개국(G20) 의장국으로서 위기발생국을 지원하기 위한 국제공조체계인 ‘글로벌 금융안전망’ 구축 방안을 제안했다. 개별 국가 차원의 통화스와프, 지역차원의 CMI, 글로벌 차원의 국제통화기금(IMF) 대출제도 같은 금융안전망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효과를 높여보자는 취지에서다.

  허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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