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가톨릭계 정약종 선생 추모 열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한국 최초의 천주교 신학자이자 신유박해 때 순교한 선암(選庵)정약종(丁若鍾.1760-1801)선생의 2002년 1월의 문화인물 선정과 관련, 새해 벽두부터 가톨릭계가 활기차다.

지난 2일 명동성당에서의 기념추모회와 가톨릭회관에서의 기념강연회에 이어 오는 20일에는 한국순교자현양위원회(02-779-0753)주최로 서소문과 마재, 천진암을 잇는 유적지 순례 행사가 준비돼있다.

또 23일 오전 10시부터 세종문화회관에서는 '정약종 사상의 역사적 이해'라는 주제로 한국사상사학회가 여는 심포지엄이,2월 1일 오후 7시30분에는 세종문화회관에서 기념음악회가 열린다.

이와함께 '신앙의 횃불 정약종의 삶'(배급 절두산 순교박물관 02-3142-4434)이라는 다큐멘터리 비디오도 출시됐다.

탤런트 장용이 정약종 역을 맡았고 이한택 서강대 총장, 한국교회사연구소 변우찬 신부, 이원순 전 국사편찬위원장, 고려대 조광 교수 등도 출연했다.

정약종은 남인의 명문가에서 네 형제중 세째로 태어났다. 그의 형 정약전은 최초의 어류생태서인 『자산어보(玆山魚譜)』를 저술했고 동생 정약용은 조선후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인물이다.

형 정약전의 권유로 스물 일곱살때 천주교를 알게된 정약종은 1786년 아우구스티노란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1795년 중국인 주문모(周文謨)신부가 입국한 뒤 주신부가 결성한 평신도 단체 명도회(明道會)의 회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1791년 제사를 거부한 윤지충이 고발되고 사형을 당하는 사건 이후 정약전과 정약용은 신앙의 길을 버렸지만, 정약종은 교회활동에 더욱 헌신했다.

그는 1801년 2월 체포된 뒤 가톨릭 신앙을 버리라는 요구를 거부, 서소문 밖에서 참수 되었다. 그의 전처 소생 큰 아들인 정철상(丁哲祥.가를로)도 4월 같은 장소에서 참형을 받고 순교했다. 그의 부인 유 세실리아와 작은 아들 정하상(丁夏祥.바오로)과 딸 정정혜(丁情惠.엘리사벳)는 1839년 기해박해 때 체포되어 모두 순교했다.

그가 쓴『주교요지(主敎要旨)』는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한글 교리서다. 당시의 저술들이 대부분 한문이었던 반면 한글로 만들어진 두 권의 이 책은 양반 이외의 계층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특히 한글로 번역된 성서가 없던 시절,이 책은 오랜 박해시기동안 깊은 산골짜기로 뿔뿔이 흩어져야했던 신자들이 교회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었던 축이 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큰 평가를 받고 있다.

정형모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