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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석의 내 맘대로 베스트 7] ‘대부’가 전설이 된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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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3면

김형석 영화 칼럼니스트 mycutebird@naver.com

영화 ‘대부’

7 블록버스터의 효시

1972년에 ‘대부’는 영화 사상 최초로 와이드 릴리스(대규모 개봉) 방식을 시도했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개봉 흥행 기록을 33년 만에 갈아치웠다. 이 영화는 할리우드의 배급 방식을 바꾸었고, 이후 ‘죠스’ ‘스타 워즈’ 등의 블록버스터가 등장하는 초석이 된다.

6 풋내기 감독의 고집

단 한 편의 흥행작도 없었던, 서른 살이 갓 넘은 젊은이였던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는 배수진을 치고 ‘대부’를 만들었다. 독불장군 스타일의 제작자에 의해 세 번이나 감독이 바뀐 상태. 하지만 코폴라는 긴 슬럼프를 겪던 말런 브랜도와 무명 신인이던 알 파치노를 끝까지 고집했고, 세트 촬영을 거부했으며, 최종 편집권을 지켰다. 그가 고집을 꺾었다면, ‘대부’는 전설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5 갱스터 장르의 재정의

1970년대 할리우드에서 갱스터 무비는 한물간 장르였다. 이때 코폴라는 장르를 뒤틀어 새로운 갱스터를 창조한다. 과거와 달리, ‘대부’는 도덕적이려고 애쓰지도 않고 권선징악을 이야기하지도 않는다. 그러면서 새로운 스타일과 공식을 만든다. 이후 만들어진 대부분의 갱스터 무비는 ‘대부’에게 한두 가지씩은 빚지고 있다.

4 몰입의 힘

2시간45분의 러닝타임은 대부분 사람들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음식을 먹는 장면이 차지한다. 화면은 지나칠 정도로 어둡고, 초반부의 결혼식 장면은 30분 가까이 지속된다. 그럼에도 결코 지루하지 않은 영화의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3 마피아에 대한 첫 영화

수많은 영화들이 범죄자들을 보여주었지만, ‘대부’처럼 쿨하고 리얼하게 실제 범죄 집단의 내부를 파헤친 영화는 없었다. 마피아를 미화한다는 혹독한 비판과, 마피아의 은근한 압력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리얼리티는 ‘대부’가 지닌 가장 강력한 파워. 한편 이 영화엔 실제로 마피아라는 단어는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2 위대한 비극

‘대부’는 그리스 비극을 연상시키는 짙은 슬픔의 톤이 지배하며, 할리우드가 괴물처럼 묘사해오던 범죄자들은 피와 살과 눈물을 지닌 인간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가족의 이야기다. “세 아들을 둔 왕의 이야기.” 코폴라가 정의하는 ‘대부’다.

1 아메리칸 드림

1945~51년이 배경이지만, ‘대부’가 보여주는 미국은 동시대인 1970년대 초다. 베트남 전쟁은 한창이고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휘청대던 미국 국민들은 지도자를 잃고 방황했다. 마이클이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왕의 자리에 오르는 과정은, 순진한 아메리칸 드림은 이미 사라졌음을 보여주며, 어쩌면 자본주의 미국은 범죄로 돈을 버는 나라가 되었고 패밀리는 붕괴됐다. “나는 마피아를 미국에 대한 메타포로 사용하고 싶었다.” 코폴라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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