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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고 김삼순 학술원 회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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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한평생 오롯이 학문의 길을 걸어온 '92세 현역' 여성 농학자(農學者)가 지난 11일 삶의 마침표를 찍었다. 다음날 빈소인 서울대병원에는 머리카락이 하얀 학계 원로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이호왕(李鎬汪.73)대한민국학술원 회장은 "자연과학계의 큰 별이 떨어졌다"며 애도했다. 춘천에서 한달음에 달려온 윤권상(尹權相.60)한국균(菌)학회장은 "초대 회장의 빈 자리가 너무 크다"고 말했다.

한국 여성 농학박사 제1호인 고(故) 김삼순(金三純)학술원 종신회원. 망백(望百.91세)을 넘긴 여류학자의 죽음 앞에서 아들뻘 되는 후배들은 한창 연구에 정진할 젊은 학자가 숨진 듯 아쉬워했다. 위암으로 고통받으면서도 숨을 거두기 전날까지 "된장.간장을 개발할 연구실 부지를 알아보라"던 고인이었기 때문이다.

서울대병원 최고령(90세) 환자로 1999년 위암 수술을 받고도 고인의 연구열은 식지 않았다. 고향인 전남 담양군 농장에 연구실을 두고 올 가을 거동이 불편해질 때까지 발효식품 개발에 매달렸다. 발효빵을 개발하기 위해 올 봄 대전의 유명제과점 '성심당'의 회장을 직접 만나러 갈 정도였다.

고인은 한국정치 사상 유일하게 '삼형제 국회의원(洪鏞.汶鏞.星鏞)'을 낸 전남 담양군 만석꾼 집안의 딸로 태어났다. '여자도 공부해야 한다'며 보통학교에 여학생반을 만든 아버지 덕분에 신식공부를 했다.

도쿄여자고등사범학교 1학년 때 일본 농학박사 제1호 가토 세치코의 강의를 듣고 "나도 꼭 박사가 돼 일본인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결심, 평생 하루 4시간 이상을 자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에서 7년간 모교인 경기여고 교사로 일한 뒤 다시 일본에 유학, 홋카이도대 식물학과를 34세에 졸업했다. "발효식품을 연구해 국민들의 건강을 돕기 위해서였다"고 이영록(李永祿.71)학술원 회원은 당시 고인의 뜻을 전했다. 金박사는 주름치마 한장과 실험복으로 유학생활 3년을 버틴 것으로도 유명하다.

서울대 교수로 있던 36세 때 고인은 3대 국회 재경위원장을 지낸 고(故) 강세형(姜世馨)씨와 결혼했다. 하지만 일찍 사별하고 61년 훌쩍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그리고 5년 뒤 57세로 규슈대에서 한국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자연과학 분야의 박사학위를 받았다. 녹말 분해효소에 관한 그의 학위 논문은 당시 20여개국 학술지에 실리는 등 높이 평가받았다.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은 金박사를 위한 것이었다. 그는 귀국 후 팽이.느타리 등 버섯의 인공재배법을 개발해 농가 수익을 크게 올리는 데 기여했다. 72년 한국균학회를 창립했고 76년 여성으로는 최초로 과학분야의 학술원 회원이 됐다. 79년에는 대한민국 학술원상을 받았다. 우리나라 버섯 3백여종을 컬러도감으로 정리한 『한국산 자생버섯』은 81세 때 내놓은 것이다.

고인은 아흔을 넘긴 나이에도 피자에 콜라를 곁들이며 영어회화를 공부했다고 한다. 홈페이지를 만들겠다며 요양 중에도 컴퓨터 공부를 거르지 않았다.

여동생 김사순(金四純.90.한나라당 이회창 총재 모친)씨가 생존해 있는 유일한 피붙이. 하지만 고인의 뜨거운 삶은 그가 학계에 남긴 수많은 아들.손자들에게로 이어질 것이다.

구희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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